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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 유연성에 남측도 수용태세/남북한 판문점 1차접촉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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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선전전 탈피 “물밑 교감” 있는듯/서울회담서 「합의서」도출 기대
남북간의 화해와 불가침에 관한 합의서 문안을 협의키 위해 11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대표간 제1차회의는 겉으로 드러난 양측의 팽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쌍방이 내면적으로 상당히 신축성있는 자세를 갖고 있는 것으로 관측돼 회담의 진전에 따라서는 12월 서울회담까지 합의서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1일의 첫 접촉은 회의 그 자체로는 양측이 만들어놓은 합의서문안을 제시하고 입장을 타진하는 정도에서 그쳤다.
우리측은 비핵화선언에 따라 「핵무기·생화학무기의 우선제거」를 추가로 요구하고 나서 입장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측이 상주대표부나 언론개방등 북한측이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대목등에 대해서 수정안을 제시할 용의를 표명한 것 등은 앞으로의 회의진전에 낙관적인 기대를 하게하는 대목이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북측의 변화이며 남쪽도 이를 수용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남북당국간의 회담은 형식논리를 둘러싸고 논전이나 벌이는 수준에서 맴돌았다.
의제의 어순을 놓고 「남」이 먼저냐,「북」이 먼저냐,혹은 「정치군사」가 먼저냐,「교류협력」이 먼저냐는 등 지엽적인 수준에서 말싸움만 벌였고,특히 상대방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제의를 공허하게 교환,선전전으로 일관한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같은 형식적인 차원에 얽매이지않고 현안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최근 남북당국이 보여주고 있는 움직임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어가고 있다는 인상을 짙게 해주고 있다.
겉으로는 팽팽히 맞서면서도 수면하에서는 「의미있는 교신」이 오가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의 조짐은 지난 4차 평양 고위급회담을 전후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은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예상밖으로 유연한 자세를 보인 것이다.
우선 회담이 연기되기 전인 8월 예비접촉에서 우리측이 합의서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제시한 남북한 평화체제구축등 10개항중 북한은 ▲이산가족문제해결과 ▲상대방체제에 대한 파괴활동 중지를 받아들였다.
북한측은 비핵지대화를 서두에 제기했지만 이 문제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도를 분명히 보여주었다.
임수경·문규현등 방북인사문제도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하는데 그쳤다.
특히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북측은 더욱 유연한 자세를 보여준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측의 10개 핵심요구사항들에 대해 북한측은 ▲언론개방 및 교류와 ▲서울·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한다는 항목만 강력히 거부했을뿐 그밖의 부분에 대해선 「수용하겠다」「토의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특히 북측의 한대표는 「상대방체제에 대한 파괴행위 중지」대목과 관련 『당신네들이 걱정해온 남조선혁명은 포기된 것』이라는 식으로 언급까지 했다는 얘기도 있다.
북측은 공식석상에서는 철저히 기존입장을 고수했다.
평화협정은 자신들과 미국간에 체결돼야하며,불가침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적신뢰구축은 군축을 통해 하면 된다고 주장한게 대표적 예다.
북한은 2원적인자세로 남북회담에 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현 정치체제는 유지하면서 동시에 이를 위해선 개방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상황에 북한이 처해있다』며 『따라서 북한의 그같은 자세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측은 북한의 이런 2중적 자세중 어느것이 진짜 속셈인가를 분석중이며 그것이 이번 판문점대표접촉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정부측도 북한의 이같은 자세변화에 맞춰 우리의 입장을 조정,북측입장을 타진하면서 합의서를 이끌어낸다는 생각이다.
정부내에서 북한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조항들에 대해 우리측이 대안을 마련하자는 견해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문·라디오·TV및 출판물의 상호개방과 교류가 대표적인 예다. 북측은 TV·라디오 등 언론개방이 북한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것이라며 이것을 고수한다면 흡수통합을 기도하는 것이라고 보겠다고 반발해오고 있다.
상주대표부조항도 북한이 「대표부」라는 용어를 극력 피하려고 든다면 받아줄 수 있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북측은 어떤 형태든 「한국의 대표부」가 평양에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고 판문점같은 곳이라면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측은 명칭이야 어떻든 그와같은 연락기구를 서울과 평양에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있어 견해차이가 없지않다.
11일의 1차 대표접촉에서 우리측이 군비감축조항에 「핵 및 화생무기의 우선 제거」를 합의서에 넣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이같은 제의는 북한이 이미 제기한 비핵지대화에 대응하면서 노태우 대통령의 「11·8선언」을 뒷받침해보겠다는 성격이 짙다.
때문에 이 조항으로 회담이 난관에 부딪칠 가능성은 없다고 보여진다.
결국 남북양측은 4차회담이후 내막적으로는 「서로 손바닥을 치려는」기미를 풍기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그러나 불가침선언·군사적신뢰구축이나 평화체제구축등 다루어야할 사안이 워낙 민감한 만큼 암초는 도처에 깔려있다고 하겠다.
11일 회담에서는 양측이 각각 밝힌 합의문안을 읽는데 그쳤고 15일 2차접촉에서부터 본격절충이 벌어진다.<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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