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에이즈 공포/매년 100명 수혈로 감염(지구촌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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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간염은 10년간 46만명…” 비밀보고서 폭로 충격/뾰족한 예방책 없어 더 불안
최근 10년간 병원에서 수혈받은 프랑스인 가운데 40만명 이상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나 B형간염등 각종 심각한 질병에 감염됐다는 충격적 보고서가 공개돼 프랑스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프랑스 르몽드지가 지난달 입수,보도한 프랑스 관계당국의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0년부터 89년까지 10년간 에이즈나 각종 간염 등에 감염된 혈액을 환자에게 수혈함으로써 약 46만명이 ▲C형간염(41만5천명) ▲B형간염(4만5천명) ▲에이즈(3천6백명)등 각종 질병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9년 8월에 작성된 이 보고서는 당시 프랑스 국립혈액원장인 미셸 가레타박사가 프랑스 혈액관리체계의 시급한 개선을 정부에 촉구하기 위해 클로드 에벵 당시 보건장관에게 제출한 비밀보고서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 보고서에서 가레타박사는 프랑스의 현혈액관리정책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매년 50∼1백명의 에이즈 감염환자가 헌혈하는 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으로 진단하고,이는 매년 1백명 이상이 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감염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 제출당시 프랑스에서 수혈에 의한 에이즈 감염인구를 3천6백명으로 추정한 가레타박사는 더욱 큰 문제는 이들중 대부분이 스스로 감염됐다는 사실을 모른채 경우에 따라 헌혈에 응하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수혈로 각종 간염에 감염된 46만명중 23만명이 만성간염으로 발전했고,특히 그 가운데 2만3천∼4만6천명은 간경변으로까지 악화됐다고 지적,프랑스 국민들을 간염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특히 올들어 수혈 잘못에 의한 각종 질병감염 문제가 프랑스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개된 이 비밀보고서는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프랑스 전국에서 5백여명이 수혈에 따른 질병감염을 이유로 정부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으며,지난 7월에는 출산과정에서 수혈을 받은뒤 에이즈에 감염된 한 부인에게 국립혈액원·시술병원·담당의사가 약3백만프랑(약 4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난적도 있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지속적 수혈이 불가피한 혈우병 환자들의 경우로 프랑스 혈우병환자 협회는 당국의 부주의한 혈액관리로 3천5백명에 달하는 프랑스내 혈우병환자중 3분의 1이 넘는 1천2백명이 에이즈에 감염됐으며,그중 2백명이 이미 사망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고 있다. 에이즈에 감염된 혈우병환자 가운데 4백명이 이미 정부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놓고 있다.
궁지에 몰린 프랑스 당국은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혈액공급이 달리는 상황에서 대책이란게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골치를 앓고 있다. 헌혈자에 대해 성실한 질병신고를 호소하고,수술에 대비해 자기혈액을 저장했다 사용하는 자기수혈제를 확대하고,분쟁에 대비한 수혈보험제를 도입하는 것등 지금까지 나온 대책들은 소극적인 것에 불과하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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