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별 왕자의 경제 이야기] ⑪ 산책에도 숨어있는 경제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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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비용, 그게 뭐야?>

2월 중순인데 예년의 3월 중순 날씨였다. 소왕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또 이강을 찾아왔다. 그는 도시락을 사 들고 남산에 산책 가자고 제안했다. 그는 서울 시민들이 이렇게 좋은 숲을 시내 한복판에 두고도 잘 이용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이강네 신문사에서 남산까지 가는 데는 걸어서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점심 때 가 본 적은 없었다. 사실 평소에도 가볼 일이 거의 없었다. 이강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소왕을 따라나섰다.

“왜 사람들이 산보 한 번 하기 어려운지도 경제학적으로 풀 수 있지.”
“설마, 바람 한 번 쐬는 것에도 경제이론이 숨어있단 말이야?”
“그렇다니까. 서울 시민들이 남산을 자주 못 가는 것은 기회비용(opportunity cost) 때문이라고.”

“기회비용? 그게 뭔데?”이강은 기회비용은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전제하고, 그걸 설명하기 위해 남대문 시장 상인 얘기를 예로 들었다.

“남산 바로 아래 국제적으로도 아주 유명한 남대문시장이 있어. 그곳의 한 상인이 1시간 일할 때 2만원을 번다고 가정하자고. 이 사람이 점심 때 한 시간의 짬을 내 산책을 하면 2만원을 못 벌게 되겠지. 이 2만원이 이 사람에겐 기회비용이 되는 거야. 누구에게나 다 시간은 제한돼 있어. 한 가지 일을 하면 다른 일을 못하게 되지. 따라서 어떤 일을 택했을 경우 다른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비용이 바로 기회비용이야.”

“장사를 잠깐 쉬고 산책을 하면 기회비용이 2만원 발생한다 이거지?”
“그렇지. 1시간 산책으로 2만원어치 이상의 기분전환이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편하게 산보할 수 있겠지. 이미 적당히 돈을 벌어 여유가 생긴 사람이라면 가능한 일이지. 2만원 대신 건강을 택할 수 있다는 얘기지. 콩글리시인데 혹시 헝그리 정신(hungry spirit)이란 말 들어봤어?”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배가 고파야 열심히 일한다는 뜻이야. 뒤집어 말하면 배가 부르면 놀 생각을 하게 마련이라는 거지. 이걸 기회비용으로도 설명할 수 있어. 사람들이 배가 부르면 왜 일을 안 하느냐 하면 바로 이 기회비용을 우습게 여기기 때문이야. 없을 때는 2만원도 큰 돈이었지. 그러나 그동안 고생해 돈을 좀 벌면 2만원이 작게 느껴지게 돼. 그러면 점심시간에 쉬면서 남산으로 산책을 나갈 여유가 생기는 거야.”

“경제학이라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산보할 여유가 있다, 없다까지도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그는 약간 흥분된 표정마저 지었다.

<경제학자는 조롱의 대상도 되지>

“그렇다고 경제학자를 만능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그 반대인 경우도 많지. 경제학자들의 전망은 틀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어. 이런 저런 전망과 예측을 내놓지만 맞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걸 꼬집는 소리지.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재미 난 말을 했지. 한 팔만 가진 경제학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는 재임시절 경제학자들을 불러 정책에 관해 자문을 구하곤 했어. 그런데 이 전문가들이 언제나 한편으론(on the one hand) 이렇지만, 다른 쪽에서 보면(on the other hand) 저렇다는 식으로 말했어. 예컨대 이런 정책을 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고 했던 거야. 그래서 손(hand)이 하나만 있는 경제학자는 없느냐고 조크를 한 거지.”

“야, 그 유머도 정말 재미있는 걸.”
“경제학자들에게 열 가지 질문을 던지면 수십 가지의 답이 나온다는 말도 있지. 질문마다 한 개의 답만 제시하면 좋을 텐데 너무 많은 답을 제시하는 통에 결국 아무 답도 얻을 수 없는 상황을 비꼬는 얘기지. 그런데 이런 조크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도 이해해야 해. 경제 이슈라는 게 그만큼 어느 한쪽으로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얘기지.”

두 사람은 남산에 도착해 벤치에 걸터앉았다. 봄기운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밖에 오래 앉아 있을 정도는 못 됐다. 일식집에서 사간 도시락을 먹고 두 사람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도 이젠 자연스레 커피를 즐길 정도가 됐다. 기초에 관한 학습대화는 이어졌다.

“종묘상에서는 꽃씨를 팔지. 사람들은 거기서 꽃씨를 사서 화분에 꽃을 키워 즐기기도 하고 팔기도 해. 지난해 봄에 베고니아 꽃씨를 산 적이 있는데 10g짜리가 2000원 정도 하더군. 즐기는 사람들은 꽃이 주는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즐기기 위해 그 돈을 쓰지. 키워서 팔 사람들은 예쁘게 키운 뒤 화분에 담아 적당한 가격, 예컨대 1만 원에 시장에 내놓고.”
이강은 경제는 달리 말해 생산과 소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관상용으로 꽃을 사는 경우가 일반적인 소비자이고, 꽃을 재배해 파는 것이 생산자의 모습이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고개를 끄덕인 그는 2000원짜리 꽃씨가 어떻게 1만 원짜리 화분이 되는지 물었다.

“전에 오만에서 물담배 값이 왜 3달러냐고 했지. 이것도 같은 이치야. 꽃씨를 사서 예쁜 꽃으로 길러내는 데는 비료가 필요하고 사람의 노동도 들어가지. 꽃을 담을 화분을 5000원 주고 사왔다고 쳐. 여기에 비료와 물값 등 소소한 비용 500원을 포함하면 화분의 생산원가는 꽃씨 2000원을 포함해 7500원이 되지. 여기에 생산자가 자신의 인건비와 이문 2500원을 얹으면 1만원짜리 가격표가 붙게 되는 거야.”

“생산자가 정한 1만원이란 가격은 시장에서 그대로 통하는 거야?”
“어떤 물건이 어떤 가격에 팔린다는 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그 선에서 합의를 봤다는 뜻이야. 일상 생활에서의 가격, 다시 말해 물건의 가치는 그렇게 정해지는 거지.”

심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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