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공주 고분 무덤 주인은 지방파견 王族일 수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1971년 무령왕릉 이후 최대급 백제 유적 발굴-. 충남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소재 고분에서 금동관모 2점과 금동신발 세켤레 등이 출토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고분은 백제가 한성에 도읍한 5세기 초반 집중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6만7천여평 규모로 조성되던 '의당 농공단지' 사업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곧 회의를 소집해 유적지 보존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이 조사는 당초 11일까지 완료될 예정이었다.

이번 발굴은 그동안 문헌자료와 고고학적 발굴 성과가 빈약해 추정과 주장이 주로 제기됐던 웅진 천도(475년) 이전 백제의 정치적 위상을 밝혀줄 획기적인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발굴조사 기관인 충남발전연구원(원장 오제직) 관계자들은 고분군에서 금동 관모와 금동 신발 등 뜻밖의 유물들이 잇따라 출토되자 밤잠을 설칠 정도로 흥분했고, 알음알음으로 소식을 전해들은 고고학계 연구자들은 '백제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발굴에 참가한 강종원 연구원은 "한성시대(BC 18~AD 474년) 백제의 세력권에 대해서는 '일본서기'나 중국의 사서 등에 단편적으로 기록돼 있을 뿐 구체적인 범위가 나와 있지 않아 공주 지역까지 백제가 지배력을 행사했는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천안 용원리 고분에서 금동 관모 조각이 나와 천안 지역까지는 한성 백제가 정치적인 지배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강연구원은 또 "'삼국사기'에는 웅진 천도 이후 백제의 중앙 정가에 연씨.백씨 등 신진 귀족 세력이 등장했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웅진 천도 이전부터 형성돼 있던 공주 지역의 토착세력이 천도 이후 정계에 진출했을 것으로 추정해 왔지만 고고학적 성과가 뒷받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시 발굴에 참가한 이훈 연구원은 "수촌리 고분군 발견으로 그동안 추정에만 그쳤던 토착세력의 실체를 확인하게 됐다"고 밝혔다. 무덤의 주인공들은 왕족이나 그에 버금가는 세력가들이나 사용했을 금동관과 금동신발 등 위세품(威勢品)을 소유하고 있었다.

또 무덤에서 중국 도자기가 나왔다는 사실은 중국과의 직교역이 불가능했을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한성의 중앙정부로부터 하사받은 것으로 볼 수밖에 없어 무덤의 주인공들이 한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李연구원은 "무덤의 주인공들이 백제의 지방통치 조직이었던 담로(魯)였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우리의 사서에서는 담로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의 사서에 백제가 자제종족(子弟宗族)을 22곳에 파견해 통치하는 담로제를 실시했었다는 기록이 나올 뿐이다. 위세품을 사용했던 무덤의 주인공이 지방 지배를 위해 중앙에서 파견한 왕족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주=신준봉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