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라의KISSABOOK] 문학을 넘어 역사·철학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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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아이에게 읽는 즐거움, 생각하는 힘, 널리 보는 눈을 길러주고 싶은 엄마들에게 나가사키 겐노스케의 '절뚝이의 염소'(문학동네)를 권한다. 한 권의 책으로 문학과 역사.철학의 정수를 고루 맛볼 수 있다.

역사 연대표는 대단한 업적을 남긴 위인이거나 지탄받아 마땅한 역적을 제외한 평범한 사람의 삶에는 단 한 줄도 할애하지 않는다. 인색하고 비정한 연대표 속에서 사건을 통해 역사를 만나는 아이들은 비판을 먼저 배운다. 하지만 '인간'을 통해 역사를 만나는 아이들은 '삶'을 배우게 된다.

이 동화는 주인공을 가려낼 필요가 없다. 모두가 주인공이다. 도살장 동네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그 처절한 하층민의 삶에도 계급이 있고, 빈부가 나뉘며, 갈등과 고립, 꿈과 좌절이 숨쉬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글 중에 전쟁 묘사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전쟁 때문에 존엄성이 짓밟힌 자상의 흔적만 생생하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이 책에 나오는 '김상'은 이념과 민족의 정의가 무엇이냐는 지난한 언쟁을 뛰어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삶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한 인간을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전쟁을 컴퓨터 게임으로 이해하는 아이들과 오늘 차분한 마음으로 '김상'을 만나보자.

생존을 위해 돼지처럼 기어 다녀야 했던 절뚝이, 그리고 아들을 일본 군대의 총알받이로 내보내고 드디어 일본인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김상의 부모. 아이들은 역사의 웅장한 정면이 아닌, 비겁하고 초라한 뒷모습에 비친 무기력한 인간의 아픔을 어떻게 느끼고 소화해 낼 것인가.

시대를 초월한 명작,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문예출판사)와 수잔 피셔 스테이플스의 '위험한 하늘'(사계절)도 함께 권한다. 인류 역사를 관통하는 묵중한 물음,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이것은 논술을 포함한 모든 글의 영원한 화두가 된다.

대상연령은 한 단계 깊은 사고 훈련으로 나아가는 12세 이상의 어린이와 아이의 독서 지평을 넓히고 싶은 엄마들.

임사라 <동화작가> romans8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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