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정신으로 끝마무리를/전육(중앙칼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권이 무너지거나 지도자의 뒤끝이 안좋을때는 반드시 「그것만 안했더라면…」하는 상징적인 후회거리가 남는다. 이런 현상은 대개 권력을 쥔 사람이 판단을 잘못했거나 권력을 에워싼 사람들의 잘못된 보좌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정부수립후 길지않은 정치사에서 우리도 몇차례 그런 경험을 했다. 4명의 최고지도자(이승만·장면·박정희·최규하)가 임기중 쫓겨나거나 시해됐고,한명(전두환)은 「귀양살이」를 했으니 짧은 기간에 비해 선례는 다양한 편이다.
이 때문인지 우리는 지도자의 이름이 나오면 헌신과 업적에 대한 합당한 평가와 예우보다 그들이 저지른 대표적 실책을 먼저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
○말기 무리수 화자초
이승만대통령의 제1공화국이 무너지고 그가 망명길에 오른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산 세대에 악몽처럼 남아있는 기억은 3·15부정선거다. 야당의 대통령후보(조병옥)가 미국에서 병사함으로써 이승만의 대통령당선이 확실시 되던때에 왜 자유당은 기를 쓰고 가공할 부정선거를 저질렀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80세를 넘은 노대통령의 유고시 승계권을 가진 부통령자리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서였다. 당시 자유당 권력엘리트들의 최대관심사는 이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명예롭게 모시는 것 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유당의 계속 집권을 통해 기득권을 수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대통령편에서 보면 「3·15부정선거만 없었더라면…」이란 한탄이 나올 만하다.
박정희 유신정권도 쇠망에 앞서 여러가지 상징적인 무리수들이 나타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0·26직전에 있었던 김영삼 신민당총재의 의원직 제명사건이었다. 꼭 관철해야할 객관적인 이유가 없었음에도 밀어붙였다가 정권붕괴의 결정적인 화근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18년재임중 GNP와 수출총액을 20배로 올려 국민들에게 한껏 자신감을 불어넣었던 그는 강제권력에 의존한 1인독재에 지나치게 안주하고 있었다.
이런 지도자밑에서 권력엘리트들은 근시안적인 업적경쟁을 벌였다. 제1야당 총재의 제명까지 거리낌없는 충성경쟁의 대상이었다. 그들에겐 독재의 이면에 급성장하고 있던 반체제세력의 도전이 가볍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부마항쟁은 순식간에 김재규가 방아쇠를 당기는 결심을 하게끔 상황을 급박하게 몰아갔다.
전두환대통령도 이제와 생각하면 땅을 칠만한 후회거리가 적지않을 것이다. 그의 임기말 계획을 결정적으로 뒤틀리게 한 것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었다는 것이 측근들의 공통된 고백이다.
이 사건으로 야당과 재야의 직선제 개헌운동이 본격화함으로써 결국 4·13양헌조치,6·10항쟁,6·29선언에 이르는 뒤죽박죽의 쫓기는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불안한 1년3개월
그 과정에서 무리하게 권력누수를 막겠다고 취한 정책과 조치,퇴임후를 대비한 노력들이 고스란히 5공청산의 대상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보고 우정과 정치의 비정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노태우대통령의 6공도 이제 임기를 1년3개월 남짓 남겨두고 있다. 임기중반까지 그에게 따라다녔던 「우유부단이냐,뭔가를 보여 줄것이냐」는 물음도 거의 해답이 나올 때가 되었다.
왜냐하면 노대통령이 어떤 대통령이냐,그가 남은 재임기간 무엇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웬만한 국민이면 나름대로 감을 가질 단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부시,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내치보다는 외교쪽에 기울어 있다. 내치에 있어선 그의 무차별적인 인내와 방임이 법과 사회안정에 대한 국민의 자발적 인식변화를 유도,권위주의를 벗어나 민주화로 가는 기초를 닦았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그의 리더십과 업적에 관한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결단을 하지못해 주요정책에 자주 실기했다든지,인사정책에 확고한 원칙이 없어 연고주의가 휩쓸게 됐다든지,외교업적에도 늘 낭비가 따랐다는 등….
그러나 노대통령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비판적인 사람 모두가 진짜 주목하고 걱정하는 것은 남은 임기동안 그가 국정수행과 정권인계에서 대통령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에게 남은 기간은 실로 가시밭길일 것이 틀림없다. 이미 정책·인사면의 누수현상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공무원은 온통 눈치만 보고있고,경제는 내리막길을 멈추게할 수단을 거의 못찾고 있다. 게다가 내년초 국회의원 선거전이 시작되면 노대통령은 온갖 원색적 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명예회복을 노리는 5공세력은 그를 배신했다고 욕할 것이며 야당은 무능한 대통령으로 몰아붙일 것이다.
부시대통령처럼 재선이라도 노린다면 노대통령의 대응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않고 계속 참는다는 것 하나로 일관했을때 우리는 또 한번 혼란과 경제실패의 「그때」를 후회하는 단임대통령을 보게될지 모른다.
○작은 것보다 큰 것을
이같은 상황전개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은 노대통령이 지금 다시 6·29를 선언했던 때의 자세로 돌아가지 않으면 게도 구럭도 다 잃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아직도 퇴임후를 염두에 두고 대책없이 벼랑논리에 기대기만 한다면 권력은 무서운 함정으로 작용할 것이란 얘기다.
87년 6·29선언을 하면서 노대통령은 『절벽에서 손을 놓는 것은 장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로다』는 백범일지를 즐겨 인용했다. 목숨을 걸고 죽을 각오로 했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지금은 퇴임후의 안전이란 작은 이익보다 마무리를 훌륭히 한 단임대통령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6·29정신은 정권쟁취 못지않게 정권마무리에도 적용되어야 한다.<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