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과소비」 막아야 산다/박세일(시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국민들은 불안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정치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부담과 고통이 되고 있다. 정치가 민생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국민이 정치의 내일을 걱정하고 있다. 요즈음 특히 국민들은 점증하는 불안감을 느낀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정치가 우리나라 경제를 결단낼 것 같기 때문이다. 민주화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서,경제만 주저앉게 만들 것 같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4대선거를 치러야 하는 선거의 해다. 그런데 벌써부터 당원단합대회다,귀향보고회다 하면서 총선대비 사전불법선거운동이 난무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도 여야를 대표한다는 인사들이 앞장서서 하고 있다. 과열·혼탁선거가 되어도 내 정파에 유리하면 나는 모르겠다는 식이다. 다른 한편에선 선거법협상을 한다고 모여앉아 여당은 이 기회에 선거구나 멋대로 늘리려 하고,야당은 정치자금이나 한껏 챙기려 하고 있다.
○희망은 커녕 부담만
어느 쪽도 선거풍토 개선이나 공명선거를 위한 제도개혁에는 절실한 관심이 없다. 참으로 순안무치의 지도자들이다.
주지하듯이 지금 우리 경제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사회의 기강을 일대 쇄신하고 이완돼 있는 민심을 바로잡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앞날은 대단히 어두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내년에 몇조,아니 몇십조원의 선거자금이 풀리고,몇십만명이 선거운동을 한다고 연중 몰려 다닌다면 우리 경제의 침몰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자금 산업에,특히 제조업에 인력난이 얼마나 심각한 형편인가. 투자의욕의 저상과 근로기강의 해이가 또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그런데 여기에 대량의 선거자금을 풀어 불건전 소비향락산업만을 부추기고,건전투자를 위축시키고,인플레심리만을 조장한다면,또 수많은 선거운동원이 몰려 다니며,땀흘려 일하는 분위기가 순식간에 먹고 마시고 노는 과소비판으로 바뀌어 버린다면 이나라 경제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래서는 안된다. 그동안 어떻게 세워온 경제입국이었는가. 이대로 두어서는 결코 안된다. 몰려오는 거대한 광란의 과소비,정치의 과소비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에겐 민주화도,경제발전도,21세기도 있을 수 없다.
내년에 있을 선거는 반드시 「돈과 사람 안쓰는 선거」,아니 「돈과 사람못쓰는 선거」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완전에 가깝도록 선거의 공영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국고부담과 중앙선관위의 주관으로 TV·라디오·신문,벽보 및 공보,소형인쇄물 등을 통한 경력소개와 정견발표의 기회만으로도 후보자와 유권자가 서로가 서로를 충분히 알고,알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철저한 공영제 돼야
반면엔 개인후보가 사용할 수 있는 돈과 인원의 상한은 가능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선거운동원은 소수의 자원봉사자로 국한해야 하고,선거비용의 사용일체는 반드시 공개돼 국민적 감시의 대상이 돼야 한다.
둘째,타락·불법선거사범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엄하고 철저한 응징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선거법은 「안 지켜도 되는 법」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타락·금권선거를 면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실은 정부쪽에 법의 엄정한 집행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오래된 법관행과 비리를 광정하기 위해선 불가피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대통령의 결연한 공명선거의지,읍참마속의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비로소 선거질서를 바로 잡을 수 있다.
이에 우리국민은 노대통령이 지난 10월15일 『돈 안쓰는 선거,질서있는 선거를 기필코 정착시키겠다』『모든 선거관련 불법행위를 엄정하고 단호하게 다스리겠다』고 한 국민에 대한 약속을 주목하고 있다.
셋째,불법타락·금권선거가 판치는 또하나의 깊은 이유는 솔직히 말해 각 정당에서 내세우는 후보자의 면면이 신통치 않은데서 온다. 국민들의 눈이 번쩍 뜨이는 그러한 훌륭한 인재들을 공천해 보자. 돈과 지역주의가 결코 오늘날같이 난무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여야 대표들은 천하의 인재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지덕을 겸비한 큰 인물을 찾아 국민앞에 내세워야 한다.
새 시대는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새로운 사고는 새로운 인재로 부터 나온다.
○새시대 새사고 필요
시대는 급변하고 있어,우리가 해결해야할 국민적 과제는 국내외로 산같이 쌓이는데,여야는 기득권에 안주하여 아직도 측근정치·금권정치·공천장사에만 탐닉하고 있지는 않은가. 과연 새 시대를 맡길 새 인물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진실된 노력을 하고 있는가 크게 반성해야 한다.
내년은 분명히 선거의 해,정치의 해가 될 것이다.
이번 기회를 민·관·정 모두가 합심해 비상한 각오로 우리나라 선거풍토와 선거질서를 바로 잡는 일대 개혁의 전조로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치러야 하는 4대선거인만큼 더욱 분발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치도 살리고,경제도 살리고,나아가 우리의 미래도 살리는 그러한 용기있고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서울대 법대교수·법경제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