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낄 줄 아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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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내가 30여년간을 교육계의, 그것도 한 직장에서, 또한 수직이란 한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격탓인 것 같다. 나는 작업대에 앉아 하루종일 일해도 싫증나지 않는다.
일을 함으로써 마음이 안정되고, 사심이 없어 작업에 열중할 수 있으니 안성맞춤이라고나 할지….
그러한 끈질김은 내 작업에만 한한것이 아니라 내 생활에도 맥락이 이어져 한 우물을 파고 있다고 할까.
요즈음 사람들 같으면 바보스럽고 우둔하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결혼하고 처음 장만한 녹번동 집에서 27년을 살아 터줏대감이 되었었고, 그 다음 이사한 현재의 아파트도 10년을 바라본다.
결혼때 장만한 홈세트를 아직도 잘 쓰고 있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나 나름대로 디자인·색상등 독특한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리라.
내가 20대일때도 우리 집에 오신 손님들은 50대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착각할 정도로 실내 분위기가 고풍스러웠던 것 같다.
아파트에 이사하느라고 눈을 감고 버렸지만 버리지 못한 짐이 아직도 남아 있어 늘 집이 좁아 보인다. 딸 아이 집에 가보면 말끔하고 시원한데….
그러나 문화유산이 남겨질수 있는 것도 나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으리라는 자부심도 갖는다. 그래서 나는 요즈음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종종 이해할 수 없다. 사용할수 있는 것도 쉽게 버리고, 새것으로 바꾸어버리는 일 말이다.
연전 독일 방문때의 일인데, 초대되어 간 댁은 의사이고 상류층에 속하는 가정임에도 TV화면이 색이 흐리고 상태가 좋지않은데 그대로 보고 있었다. 주인은 신문과 함께 보니 별로 불편함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댁의 거실 소파도 15년이 넘었다고 했다. 그때까지 탄탄해 새것같은 소파를 보고 나는 그들의 아끼는 마음과 함께 물건 하나라도 틀림없이 철저히 만드는 기업정신에 감탄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물건을 기업은 적당히 만들어 팔고 소비자는 사쓰다 얼마지나면 버린다면 바로 이것이 과소비가 아닐까. 소비자는 아끼고 절약하며, 기업은 긴 안목으로 연구개발해 대를 물리도록 튼튼하고 아름다운 상품을 만들때 우리는 오늘의 어려움을 헤쳐나갈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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