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에 남북경협 “물꼬”/UNDP 서울회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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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개발계획 공동작성을 모색/경제운용 방식 차이 해소가 큰 과제
두만강개발사업을 위한 계획서를 남북한이 공동으로 작성키로 해 남북분단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경제교류의 물꼬가 트게됐다.
그동안 한국은 북한이 대외경제협력사업으로는 최대의 구상인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참여를 추진해 왔다.
남북간의 화해와 신뢰구축은 우선 북한의 화급한 경제부문에서부터 대외개방을 통해 풀어나갈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5일부터 열린 평양회의에서 북한은 한국측과 단일안을 작성한다는데 합의,내년 1월 회의를 서울에서 열기로 하고 그사이 남북 양측이 개발안을 공동으로 검토키로 해 양측간의 협력관계가 의외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게 됐다.
이것은 북한이 소련사태이후 극심해진 경제난을 부분적 개방을 통해 타개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노선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달초 김일성 주석의 중국방문때도 이를 염두에 두고 중국의 경제특구를 집중 시찰했다.
이 과정에서 김일성은 경제부문에서는 중앙통제를 보다 완화,개별사업장별 자율권을 좀더 보장하겠다는 뜻을 전했고,중국측도 북한에 중국식 시장경제 도입을 요구,경제개방의 문을 연 것으로 안다고 정부의 한 소식통은 전했다.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러 갔던 남측 기자들에게 북한의 김정우 대외사업부부장도 『경공업부문의 생산증대가 문제』라고 문제점을 시인하고 『두만강유역 경제특구에 대한 한국의 투자나 차관공여는 희망을 가져도 되며,남북경제협력에 관한 전망을 조사검토중이나 지금 발표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해 이같은 협력이 모색되고 있음을 시사했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주관하는 두만강개발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는 남북한외에도 일본·중국·몽골·소련 등 6개국. 그런데도 남북이 단일안 작성을 위해 별도의 노력을 하게된 것은 양자사이에 경제개념에 대한 기본적 차이를 우선 해소하는 것이 이 계획의 성공여부를 좌우한다는 당사국들의 판단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까지 참여한 6개국중 이 계획에 자본을 제공할만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고,남북간에는 「대내문제」라는 공동인식이 있어 별도의 조정이 필요하다.
지난 평양회의에서 관계국들은 ▲법적 기반 ▲물적 하부구조 ▲경제운영문제 등 3개부문별로 각자의 계획서를 제출했으나,아직 본격적인 대외경제협력사업을 해본일이 없는 북한의 구상은 다른 당사국들의 안과 크게 어긋나 있었다고 UNDP 관계자가 전했다.
무엇보다 모든 경제운영이 철저히 중앙통제식으로 돼 있는 북한은 외국기업이 합작투자해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이 안 돼 있는데다 시장경제의 가격개념이 없는 큰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또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상식화된 과실송금의 개념도 없는등 대외협력을 위한 기초부터 재정립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당사국들은 남북한이 공동으로 개발구상을 작성해 제출토록 요구했다.
남북한이 우선 시급하게 조정해야 할 것은 북한의 경제제도상 대외협력이 가능하도록 시장경제원리를 부분적으로라도 수용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특구에 중앙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자율권을 갖는 관할사무소를 세우고,세관도 설치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철도노선·항만·도로연결 등 기간시설의 설치계획을 짜고,이윤처리나 과실송금문제 등 경제 운용문제까지 논의하게 된다.
이같은 단일안 작성은 무엇보다 북한에 시장경제 원리가 제한된 지역에서나마 도입돼 개방의 숨통이 열린다는 데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더군다나 한국의 투자를 전제로 남북이 함께 공동구상안을 마련하는 것은 처음으로 경제교류의 확대를 위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의 한 소식통도 『남측이 계속 주장해온 물적·인적교류를 통한 신뢰구축이 이같은 계획을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이 구상이 실현될 경우 정치·군사분야까지 남북대화를 순조롭게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두만강개발계획에 참여하는 5개국사이에 통신위성을 이용한 직통전화를 가설키로해 명분에만 얽매여 있던 정치회담과는 별도로 훨씬 실효성 있는 교류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두만강개발계획은 지난해 7월 중국이 처음 제기해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특히 UNDP는 두만강유역이 북한·소련·중국의 교차점으로 공동개발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평가,이 계획을 관계국들에 권유하기 시작했다.
또 이지역은 내륙국인 몽골이 해외로 나가는 출구로 역할을 할 수 있는데다 한국·일본 등의 접근이 쉬워 미개발지역인 동북아내륙개발에 유리한 입지라는 점이 평가됐다.
UNDP는 지난 8월말 전문가 3명을 현지에 파견해 1차 기초조사보고서를 작성했으며,관계국들의 이견이 조정될 경우 구체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한국 정부도 이미 이 조사사업에 향후 5년간 5백만달러를 지원키로 했으며 진전에 따라 추가지원도 할 방침이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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