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타격왕 빙그레 장종훈|한국시리즈 참패에 잠 못 이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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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아직도 한국시리즈에서의 참패와 무기력함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미워진다.
지난해 타격3관왕, 올 타격4관왕에 올라 타격에 관해 어느 정도 자신을 갖고 있었으나 이같이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자만 이외에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최고의 타자가 되기 위해선 최고의 투수인 해태 선동렬(선동렬)·이강철(이강철)의 볼을 때려냈어야 했는데….
한국시리즈에서의 타격성적(15타수3안타, 0.200)은 나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세 번째 도전하는 한국시리즈에 대한 부담감으로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렸으며 시즌종반 흔들리기 시작한 타격감각을 끝내 되찾지 못한 것이다.
또 큰 게임에 약하다는 매스컴의 보도에 대해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 지는 등 아직까지 정신적으로 미숙함을 드러내나 자신을 더욱 초라하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해태에 허무하게 무릎을 끓은 후 난 너무도 창피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마음속으론 경기에서는 잘할 수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고 스스로 위안해 봤기만 분통이 터져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문득 아득한 듯한 옛 시절이 떠올랐다.
충북 영동군 이수국민학교 4학년 때 하얀 유도복을 입은 지 1년 만에 방망이를 손에 들었다.
손끝으로부터 「꽉 잡힌다」는 감이 전해졌으나. 한국 최고의 타자가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촌놈」 장종훈(장종훈)은 85년 12월3일 경남창원시 창원호텔에서 아버지 장인면(장인면·52)씨의 손에 이끌려 머리를 조아렸다.
친구에게 업혀 대학의 기부금 임학이 싫어 마지못해 프로구단의 연습생이라도 시켜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팔팔한 나이에 굴욕감과 함께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각오가 교차됐다.
빙그레에서의 초년병시절은 피눈물나는 형극의 시절이었다. 배팅볼을 너무 던져 오른손이 횔 정도였다.
지난 18일 한국시리즈 시상식에서 페넌트레이스 MVP로 선정돼 부상으로 받은 그랜저승용차 위에서 기념촬영도 했지만 마음은 내내 무겁기만 했다.
모든 것을 빨리 잊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에 방망이만 속절없이 휘둘렀다.
21일 부산에서 한·일슈퍼게임에 대비한 합숙훈련이 시작됐다. 난생 처음으로 대표팀에 뽑힌 것이다.
그동안의 침울했던 마음이환 해질 정도로 새로운 각오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번 한·일전에서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욕과 함께.
지난 88년 타격에 눈을 뜨게 해준 강병철(강병철) 코치(현 롯데감독)가 대표팀코치로 또다시 개인지도를 해주니 그동안의 잡다한 일들이 말끔히 씻겼다.
더욱이 우상인 재일동포 장훈(장훈) 대선배가 직접 타격폼을 교정해주어 한국시리즈에서 고개를 못 든 못난 장종훈은 이제 일본선수의 콧대를 누르겠다는 새로운 도전과 각오로 꽉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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