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고전은논술의힘] 감옥은 문명 사회 유지하는 기본 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1면

미셸 푸코는 학교가 감옥처럼 시민을 길들이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만화가들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을 알리기 위해 1일 감옥체험행사에 참여한 모습. [중앙포토]

감옥과 군대는 많이 닮았다. 사람들이 짧은 머리를 하고 같은 옷을 입은 채 산다. 넓은 운동장(연병장)과 사열대, 그리고 건물도 비슷하다. 규율과 훈련으로 반복되는 규칙적인 일과도 그렇다. 학교도 군대나 감옥과 다를 바 없다. 단정한 머리모양에 유니폼, 운동장과 규율 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교육이 그렇다. 주변에는 감옥과 비슷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래서 미셸 푸코는 감옥이 문명의 기초가 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감시와 처벌'에서 감옥을 철저하게 파헤친다. 감옥을 제대로 알면 세상을 뿌리까지 알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감옥은 왜 생겼을까? 과거의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위와 질서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가두기보다는 고문해 죽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지금도 독재국가에서는 공개 처형이 드물지 않다. 국민을 힘으로 위협해 길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기를 죽이는 방식은 위험하다. 처형에 분노한 시민이 들고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많은 독재자가 폭력에 맞선 보통 사람들의 손에 무너졌다.그래서 고안한 장치가 감옥이다. 시민의 저항을 막기 위해 처벌을 더욱 '인간적'으로 하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감옥은 이 두 조건을 모두 갖췄다.

감옥은 보복이 아닌 교화와 교정을 내세운다. 괘씸해 혼내는 것이 아니라 잘못되었기에 바로잡아 '정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생활이 올바르게 되도록 규칙적인 일과를 강요하고 훈화를 반복한다. 질서 교육을 통해 잘못된 자세도 바로잡는다. 겉으로 보면 감옥은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푸코에 따르면 이 모두는 권력의 뜻에 맞게 사람들을 길들이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학교나 군대도 마찬가지다. 권력에 대든다고 힘으로 누르기보다는, 동작과 말투 하나하나를 훈련시켜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 놓는다. 이렇게 볼 때 학교나 군대, 아니 사회 전체는 거대한 감옥이다. 우리를 길들여 사회가 바라는 인간으로 탈바꿈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푸코의 생각을 오늘의 주제인 교과서에 비춰 보자. 일본 후쇼사 역사 교과서나 이익단체들이 만든 교과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나라하게 이빨을 들이대는 폭력은 금세 거부감과 저항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교과서는 검은 본심을 '교육'이라는 포장에 숨긴 채 다가온다. 학생들은 마음이 불편해도, 평가와 성적을 받아야 하므로 대놓고 맞서지 못한다. 교과서들은 이렇게 자신 뜻대로 우리를 서서히 길들인다.지금 우리 사회는 교과서를 놓고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너무 왼쪽으로 치우쳤다고 아우성이더니, 이제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만든 경제 교과서가 가진 자의 논리만 내세운다며 난리다. 하지만 난리법석은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특징이다. 저항과 반박은 마음대로 길들이기 어려운 성숙한 존재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안광복 교사(중동고.철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