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기자 방북 취재기(평양 77시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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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흐름·“우리식” 사이서 고민/가는 곳마다 판에 박은 역질문 공세/시민과의 통제된 만남… 「흡수통일」에 높은 우려
분단이후 세대의 기자로서 우리 조국의 북쪽 반을 대결적 시각이 아닌 화합과 통일의 대상으로 객관적,긍정적으로 보고 기록하겠다던 평양 취재에 임한 다짐은 개성 시내로 들어서면서부터 고개를 젓게 했다.
3박4일동안의 평양 취재는 보통사람들의 숨결과 속마음을 직접 호흡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한계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위안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남조선 기자 선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잘 길들여진 당국자와 안내원,그리고 동원된 것으로 보이는 시민들과 통제된 상황속에 짧은 대화밖에 나눌 수 없었던 평양의 77시간은 마치 북녘땅을 무대로 한 연극을 본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평양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녹음테이프를 트는 것 같이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한 강한 맞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남조선을 강점한 미국놈들과 통일을 가로막는 한 줌의 남한 당국자들』에 대한 비난이다.
지하철역에서 만난 역안내원과 아주머니도,백화점에서 만난 국민학생들도,냉면집 옥류관에서 남조선 기자들을 만나러 왔다던 대학생들도 적에 대한 증오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멋모르고 이들 「보통 평양시민」들(?)과의 만남에 다소 흥분했던 기자는 기자의 질문을 가로막고 오히려 『남조선 기자 선생님,좀 물어보갔시요』라고 시작해 「통일을 외면하는 남조선 기자들」을 속사포처럼 공격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녹음테이프를 틀어 놓은 듯 용어까지 똑같은 획일적 주장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심지어 이들은 「통일이 될 때까지」는 「남조선 기자들」의 카메라에 찍히기조차 거부했다.
안내된 지하철역에서 기자에게 접근한 아리따운 모습의 영광역 안내원 김미경양(19). 김양은 남측 대표단 표식으로 기자양복 왼쪽 옷깃에 단 태극기 배지를 가리키며 기자를 『불쌍하고 가련하다』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기자 선생님은 왜 훌륭한(북한의) 공화국기 대신 태극배지를 달았느냐』며 『미국놈들의 식민지 주제에 소위 「자유세계」라고 떠드는 남조선 기자 선생들은 우선 미국놈들부터 내쫓고 핵무기를 철수하라』며 삿대질을 했다.
안내겸 취재에 나선 북한 기자들은 우루루 몰려들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이크와 TV 카메라를 들이댔다.
다음날 북한주민들은 통일의 염원에 불탄 평양 시민들이 남쪽 기자들을 몰아붙이고 갑작스런 속사포 공세에 당황하거나 대응논리도 없이 몰리는(?) 남쪽 기자들의 모습을 TV등 보도매체를 통해 확인했을 것이다.
제일백화점 악기판매점에서 만난 쌍꺼풀 눈의 깜찍하게 생긴 봉화국민학교 4학년 백운실양(10)은 기자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백양이 당당한 목소리로 『남조선 기자 아저씨 「종군기자 이인모 아저씨」를 왜 북조선으로 돌려 보내지 않느냐』고 따지기 시작하자 이내 7∼8명의 대학생들이 기자를 에워싸고 북한 기자들도 예외없이 TV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기자가 『이인모 아저씨를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자 백양은 깜찍하게도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서 읽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기자는 물건을 사러왔다는 백양에게 『아저씨는 북한돈을 한번도 못보았는데 어디 북한 돈 좀 구경할까』라고 하자 돈이 없음이 분명한 백양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순간 TV카메라 플래시가 꺼지고 주위에 있던 대학생들이 집단으로 비난성 질문을 퍼부어댔다.
북한 당국의 이같은 계획된 집단공세는 바깥에 어떻게 비치든간에 그들의 내부 단속이라는 나름대로 절실한 이유때문으로 보였다.
그것은 북측의 당국자를 비롯한 인텔리계층들이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우려한 「흡수통합」에 대한 전 국민적인 경계요 방어를 위한 공세로도 보였다.
북측 사람들은 남측 대표단과 취재기자단을 만날때마다 흡수통합에 대한 위기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오히려 우리를 당황케 했다.
북한 당국은 「남쪽이 기도하고 있는 흡수통합」이 어렵다는 것을 단합되고 강렬한 주민들의 반응을 통해 보여주자는 것 같았다.
행사장에서 만난 백남준 북한 대표는 『우리는 오래전부터 개방을 해왔는데 새삼스러이 무슨 개방이냐』고 말했다.
만찬장에서 만난 북한 당국자들과 북한기자·안내원들은 「우리는 우리식대로 살아간다」고 거듭 강조했다.
위대한 수령님과 주체사상으로 무장됐기 때문에 소련·동구와 북한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77시간의 평양에서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당국과 국민들간의 태도의 이중성이었다.
그들은 세계적 변화의 흐름과 「우리식」과 사이의 딜레마로 고민에 싸여있는 것이다.
흡수통일에 대한 위구심,「우리식」에 대한 소리높은 자기변명,그런 것들은 변화의 역설적인 표징이기도 했다.
북한은 총체적 위기감 속에 대외 개방과 변화를 겨냥해 성문의 빗장만 조금 연 상태에 있다.
그러나 그 문이 언제 활짝 열릴 것인지 단정짓기는 너무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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