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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와 절제 … 김기덕 감독과 통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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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신성한 괴물들(Monstres Sacres)’을 공연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세계적 발레 스타 실비 길렘. [연합뉴스]

전설적인 발레리나 실비 길렘(42)이 한국에 왔다. 6일부터 사흘간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신성한 괴물들'이라는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다. 인도의 전통 무용 '카탁'을 현대화한 안무가 아크람 칸과 함께 솔로.듀오 무대를 차례로 펼친다. 5일 기자회견에서 길렘은 "'신성한 괴물들'이라는 제목은 나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에게 항상 두려운 존재인 무대를 의미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번 공연은 칸과 머리를 맞댄 끝에 만들어졌다. 칸의 무용이 기반을 두고 있는 인도의 춤 '카탁'은 여러 면에서 발레와 정반대의 특징이 있다. 크고 하늘거리는 발레리나가 우아함을 상징한다면 단단한 근육질의 카탁 무용수는 민첩한 행동으로 무대를 채운다. 길고 유연한 몸과 다부진 몸의 만남이다. 칸은 "길렘이 팔을 한번 뻗을 때 나는 세 번 정도 뻗어야 같은 길이가 된다"고 이번 무대의 특징을 설명했다.

길렘은 모든 무용수들이 어려워하는 '6시 포즈'로 유명하다. 오른쪽 다리를 쭉 들어 귀에 갖다 대, 6시 정각의 시곗바늘처럼 일자로 만드는 자세다. 길렘은 "처음 런던에서 이 포즈를 선보였을 때는 엄청난 혹평을 들었다"고 했다. 관객 앞에서 다리를 들어올리니 숙녀답지도, 발레리나답지도 못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 자세는 '천재'라는 그녀의 수식어를 확고히 했다.

최연소 수석 무용수 기록을 남겼던 길렘이지만 지금은 어느 곳에도 소속돼있지 않다. 그녀는 19세에 파리 오페라 발레단 역사상 최연소 에뚜왈(수석 무용수)로 승격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이 자리를 버리고 런던 로열 발레단의 객원 무용수를 선택해 특유의 도전정신을 드러냈다. 길렘은 "몇 달 전 로열 발레단과도 작별한 뒤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며 "나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곳으로 옮겨간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클래식 발레단은 발전 가능성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이를 활용하지 못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김기덕 감독의 열광적인 팬이다. 이번 공연에도 그가 와주길 바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길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를 보고 김 감독의 매력에 빠졌다"며 "고요한 분위기, 절제된 표현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표현하려는 춤의 정신과 통하는 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마흔을 넘긴 길렘은 여전히 완벽한 신체조건을 가진 무용수로 평가되고 있다. 그녀는 "몸은 나이를 먹었지만 생각은 현명해졌다"며 "정신이 진화했으니 춤도 달라진다"고 자신했다. '완벽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길렘은 "신체적으로 흠이 있더라도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보여줘야 진짜 무용수라고 생각한다"며 여운을 남겼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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