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동생 그리며 처음으로 남 위해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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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인 김희성(44.이화여대.사진) 교수의 연주회 포스터는 영 어색하다. 억지로 웃는 것같은 그녀의 표정이 부자연스러운데다 눈까지 퉁퉁 부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진 스튜디오까지 동행한 남편이 한바탕 '코미디'를 펼친 후에야 가까스로 웃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난 남동생 현진씨 때문이다. 두살 터울의 동생은 갑자기 발견된 뇌종양으로 투병 1년 만에 숨졌다. 심한 두통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손 쓸 수 없는 상태"라는 선고를 내렸다고 한다.

김 교수는 "동생이 떠난 후 여섯달 동안 거의 침대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연주나 연습도 아무 쓸모없이 느껴졌다.

하지만 김 교수는 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독주회를 연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동생을 추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연주회의 수익금 전액을 암과 투병하는 환자들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암 투병에 돈이 굉장히 많이 들더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연주회에 암 투병 환자 400여 명도 초청했다. 연주회 마지막 곡인 길망의 '오르간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심포니'는 이들을 위해 선택했다. '작은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파이프 오르간과 진짜 오케스트라가 만나 크고 웅장한 소리를 내는 곡이다. 김 교수는 "암 환자들이 이 곡을 듣고 희망을 가질 것같아 선택했다"고 말했다.

동생을 위한 곡도 넣었다. 취미로 바이올린을 켜던 동생이 가장 좋아하던 모차르트의 '환상곡'이다. 김 교수는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동생이 옆에 함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연습실 벽 한 켠에는 동생 사진이 붙어있다. 연습에 지칠 때 투병하던 동생을 떠올리고 힘을 차렸다고 했다.

증권회사를 다니며 바쁘게 살던 동생은 투병 중 누나에게 "몸은 병에 걸렸지만 마음의 병은 나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부질없이 허망한 꿈을 좇으며 살았다는 뜻이었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동생을 잃고 슬픔에 빠져있던 김 교수를 일으켜 세운 것도 동생의 이 말이었다. 10여년 동안 매년 연주회를 했지만 한번도 남을 위한 음악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에서란다.

음악회를 열기로 결정한 후 힘든 일도 많았다고 한다. 함께 출연하기로 한 지휘자 장윤성(44.창원시향 상임)씨가 "이번 연주의 방향이 뭐냐"고 물었을 때 김 교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펑펑 눈물만 쏟았다. 동생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면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이번 연주회 의미는 단순한 수익금 기부에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암과 싸우는 사람들이 음악을 들은 뒤 힘을 차리시고, 청중들은 암 환자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김호정 기자<wisehj@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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