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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은 정치색 옅은 실무형 청와대는 강력한 친정체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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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내각과 청와대 비서실 개편의 얼개가 드러나고 있다.

내각은 '한덕수 총리 체제'로 굳어지는 기류다. 청와대는 "후임 총리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았다"(윤승용 홍보수석)고 밝혔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한 전 경제부총리의 총리 기용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한 전 부총리는 노 대통령이 2월 27일 인터넷 언론과의 회견에서 제시했던 총리 인선 기준에 여러 가지로 부합된다. 우선 '행정 실무형'에 부합한다. 노 대통령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중요성을 인식시킨 주역 중 한 명으로 한.미 FTA에 대한 정부 의지를 내보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내부 검토 과정에서 한 전 부총리가 높은 점수를 받은 건 국회 인준에서 무난히 통과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경제 관료 출신인 한 전 부총리는 정치적 색채가 엷은 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에 총리 지명자가 연거푸 국회 인준을 통과하지 못해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을 준 사례가 있다"며 "노 대통령이 행정 실무형 기준을 제시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총리 후보로 경합해 온 김우식 과기부총리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반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윤철 감사원장은 국회에서 여러 차례 한나라당 의원들과 마찰을 빚어 '옥에 티'로 작용했다. 두 사람의 후임자를 다시 찾아야 하는 부담도 겹쳤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한 전 부총리 카드를 선택하기로 한 건 열린우리당까지 탈당한 마당에 남은 임기 동안 내각만큼은 정치 외풍에 휩쓸리지 않고 국정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반면 노 대통령은 임기 말 비서실을 강력한 친정(親政)체제로 꾸려 갈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당적을 정리한 만큼 내각은 안정적으로 운영할 것"이라며 "그러나 청와대 비서실의 경우 임기 마지막까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수석도 5일 비서실장 교체 사실을 발표하며 그 후임으로 "대통령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건강이 나빠 10개월간 야인 생활을 하는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1순위로 거론되는 이유다. 문 전 수석은 '왕(王)수석'으로 불릴 만큼 노 대통령의 신뢰가 두텁다.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은 행정 실무형 내각과 친정형 비서실이라는 이원 체제로 임기 말 국정 운영의 누수를 막겠다는 구상을 다듬은 셈이다.

특히 이병완 실장 교체설이 조기에 부상한 데는 총리 인선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전 부총리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졸업했다. 청와대 측은 총리 인선 요인 중 출신 지역이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대법원장.국회의장이 모두 호남 출신인 마당에 총리까지 호남 출신이어선 곤란하다는 속내를 보였다. 그 때문에 '호남 총리-영남 비서실장'이라는 지역 균형 카드가 부상했다는 후문이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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