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칼럼

일등 국가, 일등 승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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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계화를 말하고 지구촌을 강조해도 세계는 아직 나라를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 상품과 서비스와 자본이 국경을 넘나든다고 하지만 사람만은 국경 안에 갇혀 있다. 나라에 따라 사람 값도 다르다. 똑같은 노동을 해도 어느 나라에서 하느냐에 따라 노동 값이 달라진다. 같은 일감도 미국에서는 인도에서보다 임금을 몇 배 더 받는다. 나라를 잘 만난 덕에 자기 분수를 넘는 대접을 받는 것이다. 조지워싱턴대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박윤식 교수는 미국 주류사회에서 성공한 인물이다. 그는 성공한 교포들과 워싱턴 한.미포럼을 만들어 한국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는 한국에 와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지금 미국은 일자리가 널려 있어 젊은이들이 골라서 간다고 했다. 웬만큼 좋은 대학원 출신이면 초봉 10만 달러는 보통이라고 했다. "그 애들이 똑똑해 그런 돈을 받는 것이 아니에요. 똑똑하기로 말하면 한국 학생들이 더 똑똑하지요. 나라를 잘 만났기 때문이지요."

나라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일등 국가가 되면 국민은 자연히 일등 시민이 되는 것이다. 비행기 일등석은 모든 서비스가 다르다. 개인이 잘나고 못나고 관계없다. 일등석 티켓만 있으면 일등 승객의 대우를 받는다. 여유 있는 좌석은 물론이고 기내식부터 선물까지 패키지로 일등 대접을 받는 것이다. 과거 완행열차 3등칸을 생각해 보라. 자리를 더 많이 차지했다고 싸우고 거기서 옷 좀 잘 입었다고 힐끔거리고…. 개인이 아무리 잘나도 3등칸에 타고 있으면 3등 손님이 되는 것이다.

일등 국가는 민주주의, 문화 수준 등 여러 기준으로 정해질 수 있으나 절대적인 것은 역시 경제다. 누가 뭐래도 잘사는 게 기준이다. 이 정부도 2030이니 하며 경제 목표를 자주 발표했다. 우리 경제가 청사진이 없어서, 목표가 없어서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니다. 경제 이치를 모르거나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 정부 들어 더욱 그렇다. 이걸 고치지 않으면 일등 국가는 될 수 없다.

먼저 우리 눈을 안에서 밖으로 돌려야 한다. 비좁은 3등칸 안에서 자리싸움할 것이 아니라 일등석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려면 성장과 분배의 논쟁을 끝내야 한다. 성장 없이는 일등 국가가 될 수 없다. 이미 일등 국가가 된 나라들도 계속 성장을 추구한다.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쟁에 나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전쟁 때 최고 목표는 승리요, 평화 시 최고 목표는 성장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경쟁을 피해서는 안 된다. 경쟁만이 창의력과 효율성을 높여 준다. 지금처럼 우리 사회가 경쟁을 회피하고 자기들만의 성을 쌓는다면 경제는 활력을 잃게 된다. 기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 정부가 경제의 주체가 되는 일류 국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기업가의 모험심과 창의력만이 부를 증대시켜 준다. 개방해야 한다. 보호주의로 일등 국가가 된 나라는 없다. 200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레스콧 교수는 "기업가들의 재능을 발휘하게 하려면 개방밖에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인들은 이미 가진것을 보호하는 데만 재능을 쓰려 한다"고 말했다.

세계 열차는 달려가고 있다. 일등칸을 차지한 나라, 2.3.4등칸을 차지한 나라들…. 우리는 지금 몇 등 칸의 나라인가. 그나마 2등칸에서 3등칸으로 떨어지지는 않을까. 미국은 일등 국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경쟁력과 효율성이 높은 나라다. 우리 객차가 미국 칸 옆에 있다면 서로 왕래를 하며 미국의 장점을 어느 나라보다 빨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심훈이 그렇게 갖고 싶었던 나라, 내 나라를 일등 국가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