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세계 이통·단말기 업체 '블루오션 경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그래픽 크게보기

일본 도쿄의 한 휴대전화 양판점에서 고객이 3세대 휴대전화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달 26일 일본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게이오 플라자 호텔 로비. 서울 본사에서 3세대 이동통신 전국 서비스 개시를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분주한 조영주 KTF 사장에게 휴대전화로 동영상 통화를 시도했다. 신호음이 잠시 이어진 뒤 환한 미소를 머금은 조 사장의 얼굴이 휴대전화 안에 들어왔다. 조 사장은 "3세대 서비스로 이제 보고 즐기는 멀티미디어 동영상통화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단일통화권 시대를 열 3세대 이동통신의 국제 동영상통화 기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은 이미 '3세대' 세상이다. NTT도코모가 2001년 도쿄를 중심으로 3세대 서비스를 시작해 휴대전화로 상대방과 얼굴을 보며 통화하는 게 낯선 일이 아니다. 영화나 TV드라마, 뮤직비디오의 하이라이트만을 모아 보거나(비디오 클립핑) 형형색색의 문자와 이모티콘 등으로 치장한 이메일(데코레이션 메일)을 이용하는 것도 일반화돼 있다. 일본의 경우 전체 휴대전화 가입자 9971만 명 중 6527만 명(65%)이 3세대 서비스 가입자다.

이 같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3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놓고 세계 이동통신업체는 물론, 장비.단말기 업체 간 글로벌 각축전이 뜨거워지고 있다. 일본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이미 아시아시장을 겨냥해 3세대 이동통신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 특히 3세대 이동통신 시스템과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아시아에서 표준화함으로써 국제로밍 서비스나 모바일 결제 시스템 등을 이끈다는 전략이다. NTT도코모는 한국을 비롯한 인도네시아.대만 등 아시아 8개국 이동통신 사업자가 참여하는 '커넥서스 모바일 얼라이언스'를 구축했다. 일본 정부도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해외 진출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 차이나유니콤 본사 직영 대리점에서 고객들이 서비스 가입 상담을 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 종합통신기반국 이동통신과의 니시가타 노부히사(西潟暢央) 과장보좌역은 "일본에서 3세대 서비스는 이제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초고속.대용량 통신에 대응한 콘텐트 산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올해 초 중소 콘텐트 업체들이 설비투자 없이도 휴대전화 사업에 진출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준 것도 이 같은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내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 차원에서 독자 3세대 이동통신(TD-SCDMA)기술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 이동통신사업의 자문을 맡고 있는 베이징정보통신대(北京郵電大) 슈후아잉(舒華英) 석좌교수는 "중국은 3세대 서비스에 일본이나 한국보다 늦게 뛰어들었지만 독자 기술 개발을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내년 베이징 올림픽 때 최첨단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독자 기술 개발에 나선 것은 글로벌 기업들이 기술 제공과 협력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 주도로 지난달 6일 베이징시에 문을 연 연합서비스 개발센터엔 SK텔레콤을 비롯해 지멘스.노텔 등의 외국기업이 참여 중이다.

이들 기업은 이동통신 가입자가 4억6000만 명(지난해 말 기준)에 달하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진출에 이동통신사업의 명운을 걸고 있다. 중국 다탕모바일의 탕루안(唐如安) 총재는 "연합서비스 개발센터는 TD-SCDMA의 상용화를 위한 핵심 기술과 통신망 구축 노하우, 응용 서비스 등을 개발할 것"이라며 "SK텔레콤도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연내 3세대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유럽의 보다폰.오렌지.T모바일 등 이통사업자들은 포화상태에 달한 유럽 이동통신 시장에 3세대 서비스가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첨단 부가서비스가 가능한 3세대 서비스를 조기에 본격화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오병기 KTF 글로벌전략팀장은 "유럽 업체들은 인도.중국 등 이머징마켓(떠 오르는 시장)의 공략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10년 후를 내다보고 4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이동통신 업계도 역시 3세대 서비스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미국 최대 이통 사업자 싱귤러와 2위 업체 버라이즌은 지난해 말 전국 대부분 대도시 지역은 물론, 중소 도시에 3세대 이동통신망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광활한 국토 때문에 새로운 통신 장비를 설치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고 있지만 이미 버라이즌은 3세대 서비스에 기반한 게임과 위치기반 서비스(LBS)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로 돈을 벌고 있다.

조준호 LG전자 정보통신본부 북미사업부장(부사장)은 "올해 미국 시장에선 새롭게 열리는 3세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이동통신 회사는 물론 장비 제조업체 간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별취재팀

NTT도코모 쓰지무라 본부장

"다양한 콘텐트로 차별화 전략" … NTT도코모 쓰지무라 본부장

일본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인 NTT도코모의 쓰지무라 기요유키(村淸行.사진) 제품.서비스 본부장은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는 다양한 콘텐트를 즐길 수 있는 게 차별 요소라고 말했다. 52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NTT도코모는 2001년부터 3세대 이동통신 지역 서비스를 시작했다.

쓰지무라 본부장은 일본에선 뉴스.영화의 중요한 대목을 편집해 휴대전화에 저장했다가 다시 보는 '클립핑' 서비스나 이메일의 문자 크기.색깔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데코레이션 메일' 서비스가 인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3세대 서비스의 가장 큰 특징인 동영상통화를 이용해본 고객은 모두 만족해 한다"며 "특히 고향에 있는 노부모와 통화하거나 해외여행 중 가족과 통화할 때 많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통화료가 비싸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가입자 유치 경쟁 때문에 통화료는 계속 내려가는 추세라고 답했다. 다만 고객들이 빨라진 통신 속도를 이용해 다양한 데이터를 이용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이용료 부담은 늘어나게 된다고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해 NTT도코모는 월 3900엔(약 3만1000원)만 내면 데이터 통신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정액제 상품을 내놔 호평을 받고 있다.

그는 "3세대 서비스에선 세계 각국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로밍 서비스를 원활히 하려면 세계 각국 이동통신 업체와 손잡을 수밖에 없고, 다양한 콘텐트 확보를 위해 콘텐트 업체와 끊임없이 제휴하는 게 긴요하다는 얘기다.

중국 TDIA 양후아 비서장

"올림픽 계기로 세계시장 주도할 것" … 중국 TDIA 양후아 비서장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으로선 중요한 이벤트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3세대 최첨단 이동통신 서비스를 선보여 세계 통신시장의 중심이 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 3세대 이동통신 표준연합회(TDIA)'의 양후아(楊.사진) 비서장은 세계 3세대 이동통신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중국의 의중을 감추지 않았다.

중국 정부는 중국식 3세대 이동통신(TD-SCDMA) 기술의 독자 개발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중국 국민이 쓰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는 자체적으로 만들어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다'는 중국의 '자주창조' 원칙을 이동통신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정부는 자국이 세계 최대 이동통신 시장이면서 향후 성장 잠재력도 가장 크다는 점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양 비서장은 최근 중국 정부가 TD-SCDMA 기술 개발 차질로 3세대 사업자 선정을 미룰 것이라는 일부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중국의 3세대 이동통신 상용화에 지멘스.모토로라 등 다국적 통신기업들이 거의 모두 참여하고 있다"며 상용화 성공을 자신했다. 이어 "다탕모바일과 SK텔레콤의 공동 테스트, 차이나모바일의 대대적인 시험 서비스 등이 일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차이나모바일은 3월 말 전세계 통신장비 업체를 대상으로 TD-SCDMA 관련 장비와 단말기 입찰을 할 예정이다. 이들 장비와 단말기는 베이징 등 중국 10개 도시의 시험 서비스에 쓰인다.

특별취재팀:이원호(팀장)·이희성·김원배·최익재·장정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