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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에도 의연한 불 긴축정책/배명복 파리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즈음 프랑스 장관들에게는 「금족령」이 내려져 있다. 파리 시내를 벗어나 교외나 지방에 가기 위해서는 총리의 사전허락을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신변안전 때문이다.
지방에 출장가는 장관들이 구체적인 신변위협을 느껴야 할 정도로 요즘 프랑스 농촌의 분위기는 살벌하고 험악한게 사실이다. 전국 도처에서 농업예산 삭감과 농정실패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과격·폭력시위가 그치지 않고 있다.
지방의 어느 만찬모임에 참석했던 한 장관은 장관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온 농민들이 닥치는 대로 부수고 내던지는 바람에 혼비백산해 만찬장에서 쫓겨난 사례가 있는가 하면,어느 장관은 길을 막고 썩은 계란세례를 퍼부어대는 농민들 때문에 지방행차를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이밖에도 지방에 갔다 봉변당한 장관이 한 둘이 아니다.
화가 난건 농민만이 아니다.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간호사들이 벌써 몇주째 시위를 계속하고 있고,국가가 경영하는 철도·항만·항공 및 일부 자동차회사 등에서도 파업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총파업 우려마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쯤되면 적당히 타협하고 국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법도 한데 프랑스 정부는 꿈쩍도 않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경제운용원칙은 한마디로 「비인플레정책」이다.
그 결과 현재 프랑스의 인플레율은 선진공업국중 가장 낮은 연 3%로 일본(3.5%)이나 독일(3.8%)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인플레억제를 위해 프랑스 정부는 계속 국민들의 허리띠를 조여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정말 인기없는 정책이다. 최근들어 미테랑 대통령과 크레송 총리의 인기가 곤두박질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는 이러한 고집스런 경제정책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정부의 이같은 정책이 과연 잘된 것이냐는데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선거때만 되면 선심이라도 쓰듯 마구 돈을 풀어대는 우리나라 위정자들로서는 한번쯤 새겨볼만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통치한다는게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아우성치는 거리의 군중들을 향해 엊그제 미테랑 대통령이 던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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