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세계적인 포토 저널리스트 레자 데가티 방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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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사진에 찍히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좋은 사진은 절대 나올 수 없습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이 자신의 얼굴과 영혼을 편안하게 카메라 앞에 내보일 때 그 사진에 진정한 인간애가 담길 수 있기 때문이죠."

포토 저널리즘 분야에서 명성을 인정받고 있는 사진작가 레자 데가티(51)가 지난달 29일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번 방문 기간에 다큐멘터리 전문지 월간 지오(GEO)가 제정한 '제1회 지오-올림푸스 사진상'에 출품된 각종 사진을 심사하고, 포토 저널리즘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보도 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의 주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몇년 전 에티오피아.소말리아의 기아 참상을 사진에 담는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저도 배고픔이 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이란에서 태어난 레자는 테헤란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1970년대 후반 정부를 비판하는 사진 때문에 3년간 옥살이를 했다. 79년 이란혁명을 담은 사진으로 유명해졌고, 81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이후 뉴스위크.뉴욕 타임스 기자로서 아프가니스탄.레바논.캄보디아 등 분쟁지역에서 전쟁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또 내셔널지오그래픽.지오 등 유명 잡지에 단골로 표지사진을 실었다. 그가 포토 저널리즘과 인연을 맺은 것은 열여섯살 때다.

"제가 사는 동네의 어시장에 갔는데 할머니가 '사는 게 너무나 고달프다'고 했어요. 생선을 파는데 경찰이 수시로 찾아와 돈을 뜯어간다는 거예요. 그때 처음으로 만든 4쪽짜리 잡지에 할머니 이야기를 실었죠. 관청에서 할머니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를 체포한 경찰이 '잡지 발행을 중단하라'며 제 앞에서 잡지를 마구 찢더라고요."

그는 일반 사진가와 포토 저널리스트는 분명히 다르다고 했다. "매우 아름다운 숲을 상상해 봅시다. 그곳에는 예쁜 새와 향기나는 꽃들이 있고요. 그런데 그곳에서 누군가 나무를 자르면서 숲을 망치죠. 사진가는 아름다운 장면을 찍는 데 열중하죠. 그러나 포토 저널리스트는 나무를 자르는 사람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환경 파괴 현장을 세상에 알려 숲을 더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해서죠."

그는 "지금까지 보도 사진을 찍을 때 한번도 인위적으로 연출하거나 조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초상화를 찍을 때엔 "잠시 그대로 있어 달라"는 식으로 주문한다고 했다.

"사진 연출은 포토 저널리즘의 기본 윤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수많은 할리우드 전쟁영화가 있지만 제가 지금까지 본 전쟁들의 10%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봐요. 조작한 사진이 실제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없습니다."

레자는 전쟁터에서 사진을 찍는 게 두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누군가 내 몸에 총구를 들이댔을 때 조금도 위협당하지 않자 상대방이 오히려 위축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5월 아프가니스탄에 비영리단체인 AINA를 설립하고 카불 등 8개 도시에 미디어.교육센터를 세웠다.

"한번은 유명 자동차회사가 차의 속도를 부각시키는 광고 사진을 부탁했어요. 돈을 많이 주겠다는데도 거절하니까 저를 이상하게 봤죠. 과속에 의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을 봤을 때 '혹시 내가 죽인 것은 아닐까'라는 회한이 들까봐 거절했던 것입니다. 포토 저널리즘은 이 세상을 보다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글=하재식.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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