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그래서 전투병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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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한국인이 이라크 게릴라 공격에 피살된 바그다드 북부 사마라~티크리트 고속도로가 어떤 곳인가를 아는 것이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고 파병 논의를 효과적으로 하는 데 필수적이다. 티크리트는 사담 후세인의 고향이고, 사마라와 티크리트는 후세인의 장기 폭정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본 수니파 삼각지대에 든다. 지난 주말 일본인 외교관 2명이 피살된 곳도 이 고속도로에서다.

사마라에서는 6개월 전 미군이 도심의 결혼식장에서 하객들에게 실수로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사마라의 젊은이들은 줄줄이 그들이 말하는 '성전(聖戰)'에 참가하고, 미 군정이 임명한 경찰서장과 부족장들까지 미군의 사마라 철수를 요구해 미군은 사마라 시내 세곳의 캠프 중 두곳을 폐쇄했다. 한국 민간인들이 게릴라의 공격을 받은 날인 11월 30일 대낮 시내 중심가에서는 미군과 게릴라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져 이라크인 54명이 사살됐다. 이라크전쟁 이후 최악의 사건이었다. 수니 삼각지대는 후세인 잔당으로 보이는 게릴라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던 알카에다 패잔병들의 활동 중심지로 바뀌고 있다. 그들의 게릴라 활동의 특징은 공격목표에서 군인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여름 그들의 공격을 받아 수석대표를 잃은 유엔 바그다드사무소는 미국으로부터 홀대받으면서도 이라크 지원활동을 하던 평화의 사도들이었다. 오무전기의 4명의 직원도 바그다드에 전력을 공급해 이라크인들의 생활을 편하게 해 주려던 사람들이었다. 일본인 외교관 2명도 재건 지원을 논의하러 티크리트로 가던 길이었다.

이 정도의 설명으로 두 가지 확실한 결론이 나온다. 후세인 잔당들이 수니파 삼각지대를 중심으로, 후세인 시대에 향수를 갖는 수니파 이라크인들을 선동하고 동원해 저항운동을 전개한다. 거기에 아프가니스탄 등 외부에서 일거리를 찾아 잠입한 직업적인 테러리스트들이 또 다른 게릴라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유엔의 복귀와 여러 나라의 추가 파병을 막아야 한다. 후세인 잔당의 배후에 후세인 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이라크 게릴라들이 바라는 것은 혼란스러운 정세의 계속이다. 혼란이 계속돼 미군에 대한 반감이 후세인 잔당에서 일반 이라크인들로 확산되는 것을 기대한다. 그들의 표면적인 적은 미국이지만 마음속의 적은 치안회복을 통한 이라크 정세의 안정과 순조로운 전후 복구다. 그래서 그들은 미국이 당초의 일정을 바꿔 내년 7월까지 이라크 과도정부에 주권을 완전히 이양할 계획을 밝히자 오히려 불안하고 초조해 무차별 게릴라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이 이라크에 어떤 성격의 부대를 얼마나 보낼 것인가의 진지한 논의는 이런 사정을 시야에 두고 진행돼야 한다. 한국인 최초의 희생자가 생긴 것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얻는 결론은 그렇기 때문에 파병 결정을 철회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에 보내는 부대의 구성에서 전투부대의 비중을 더욱 높이자는 것이어야 한다. 자위능력이 없는 재건지원 위주의 부대를 보내면 누구보다 이라크 게릴라들이 가장 반가워할 것이다.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다른 나라들의 기를 꺾는 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원하는 수준의 공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파병을 백지화하는 것은 어떤가. 파병의 백지화가 한.미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없어 언급을 생략한다. 그러나 이라크 사정은 다르다. 게릴라 공격이 무서워 파병 철회가 속출하고 미군이 철수를 서두르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후세인이나 그 잔당의 권력 복귀일 것이다. 그것은 수만, 수십만명의 쿠르드족과 시아파에 대한 피의 보복을 동반한 21세기판 테르미도르(反動)일 것이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이다.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수만명의 국민을 독가스로 학살하고 일족의 세습왕조를 세운 후세인 일당의 복귀를 용납할 수 있는가. 파병 백지화는 명분과 실리를 함께 포기하는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大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