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열매 맺자” 남북화답/평양 총리회담으로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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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청명한 햇살 받으며 북으로…/북,수행원·기자단 신분확인 생략 “그냥 가시죠”/개성 여학생 8명 통일각에 나와 꽃다발로 환영
남북관계개선의 극적인 돌파구마련의 기대를 안고 남북고위급회담이 10개월만에 재개됐다.
우리대표단이 판문점군사분계선을 넘어 평양으로 떠난 22일 가을햇살은 밝았다.
○…이날 오전 8시30분 정원식 국무총리등 우리측 대표 7명은 판문점을 통과,북으로 향했다.
청명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정총리가 탄 검은색 벤츠 380승용차를 앞세우고 김종휘 차석대표와 회담대표 5명이 탑승한 하늘색 벤츠 승용차가 뒤따랐다.
대표단은 개성에서 열차로 바꿔타고 오후 1시 평양에 도착,숙소인 주석궁내 백화초대소에 여장을 풀었다.
정총리는 이날 판문점에서 북측이 보내온 승용차에 타기에 앞서 환송나온 최호중 부총리가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인사하자 『고맙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한뒤 취재진·회담종사자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이들을 박수로 환송했다.
○…이날 정원식 국무총리를 제외한 대표단·수행원·취재기자등 전원은 오전 6시 광화문정부종합청사 2층 후생관에서 꼬리곰탕으로 아침식사를 한뒤 6시45분 버스편으로 판문점을 향해 출발.
정총리는 6시20분쯤 2층 총리전용식당에 도착,대기하고 있던 최호중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서동권 안기부장,정해창 대통령비서실장,최형우 정무1장관 등과 20여분간 환담하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공관 서재에서 잠시 기도를 드렸다』고 소개.
정총리는 이어 『10개월만에 열리는 회담인데 아무쪼록 작은 결실이라도 거두도록 해야겠다는 각오』라며 다소 상기된 표정.
○…정총리등 우리측 대표단은 광화문→서대문→통일로→임진각을 거쳐 1시간10분만인 7시55분 판문점 평화의집에 도착.
이날 이른 시각임에도 불구,출근중인 일부시민들은 대표단이 탄 승용차 행렬이 지나갈때 손을 흔들며 회담의 성공적인 결실을 기원.
○…평화의집 1층 휴게실에서 정총리등 남측 회담대표들은 북측의 최우진 대표와 최봉춘 책임연락관을 맞아 오전 8시20분부터 약 5분동안 북측 최대표의 외교관 경력 및 날씨,고위급회담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등을 화제로 환담.
정총리는 북측 영접대표들과 간단한 수인사후 곧 북측 최대표가 대사로 있었던 아프리카 「가나」의 이야기로 말머리를 꺼내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정총리는 특히 『황해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이번 방북이 개인적으로도 감회가 깊다』며 『유엔가입등 주변정세도 변했고 이번 회담이 오랜만에 열리는 만큼 국민들의 기대도 크니 좋은 결실을 맺자』고 언급.
이에 북측 최대표는 『우리 또한 정총리선생에 대해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화답.
○…남한측 대표단의 이동복 대변인은 이날 오전 8시10분 평화의집 현관 계단에서 판문점 통과성명을 발표,『우리대표단은 이번 두번째 평양방문을 앞두고 이땅에도 하루속히 화해와 협력의 새역사를 열어야 한다는 결의와 확신을 국민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8분동안 낭독된 성명에서 이대변인은 『이번 회담을 통해 적십자회담이 시작된지 만 20년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고 있는 1천만이산가족들의 문제가 해결의 돌파구를 찾게되기를 희망한다』며 『북한당국자들도 화해와 협력의 시대정신에 부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북한이 국제기구의 핵사찰을 무조건 수용하고 핵무기개발을 포기할 것을 특별히 강조한다』고 말해 회담에서 북한의 핵개발문제를 비중있게 거론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8시20분쯤 북측회담대표인 최우진 외교부 순회대사와 최봉춘 책임연락원이 검은색 벤츠승용차를 타고왔고 우리측 회담대표들을 북으로 태우고 갈 하늘색 베이지색 벤츠승용차 10대도 함께 왔다.
○…우리측 수행원 33명과 기자단 50명은 정총리등 회담대표단의 입북에 앞서 8시16분쯤 「평화의집」을 나와 도보로 중감위 회의실을 거쳐 5분만에 입북절차를 완료.
북측 관계자들은 신분확인절차를 위해 수행원·기자단의 명단과 사진첩을 준비해왔으나 이미 세차례나 이같은 「통과의례」를 치른 탓인지 신분확인절차를 완전히 생략한채 『그냥가시죠』『들어가세요』등의 인사말로 대신.
○…8시30분쯤 남측 대표들이 북측지역 통일각에 도착하자 안병수 조평통부위원장,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김정우 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등 연형묵 총리를 제외한 북측 회담대표단 일행이 건물밖으로 나와 영접.
이어 개성 선죽고등중학교 3,4학년 여학생 8명이 『어서오십시오. 통일을 위해 힘써주십시오』라는 인사말과 함께 대표들에게 꽃다발을 전달.
○…이날 분계선 너머 판문각 앞에는 북측 기자들이 5∼6명 밖에 나오지 않아 지난해 2차회담때 20여명이 취재경쟁을 벌였던 것에 비해 다소 썰렁한 분위기.
일본기자 3∼4명을 제외하고는 평양주재외신기자들도 거의 없었고 특히 소련기자는 최근 북한­소련관계 탓인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남북한 기자들은 회담전망을 두고 『남측 태도가 문제』『북측 태도에 달려있다』고 공방하다 『결국 기자들 태도에 달렸구만』이라는 누군가의 농담에 파안대소.
한 북측기자는 『요즘 평양에서는 우리축구팀이 워싱턴에서 미국팀에 승리한 것이 화제』라며 『미국을 이겼다는데 온 민족이 기뻐하고 있다』고 전언.
또다른 북측 기자는 『요즘기온이 평년보다 3∼5도쯤 낮아 다소 쌀쌀하지만 날씨가 쾌청하고 단풍이 절경이어서 회담도 잘되지 않겠느냐』고 낙관하기도.<판문점=박병석·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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