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 넘치는데 입찰은 냉랭…경매 한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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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지난 1일 오전 서울 광진구 자양동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법원경매부동산 입찰장. 올 초만해도 경매투자자로 발디딜 틈 없이 북적댔지만 이날은 한산한 분위기였다. 이날 경매에 오른 72건 가운데 27건만 주인을 찾았고, 나머지는 유찰됐다. 응찰자 수도 크게 줄어 다세대주택.상가 등은 1~2명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 경매 참가자들은 "경매입찰자 등이 올 초에 비해 50~60%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 경매 부동산 시장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경기 침체 여파로 새로 경매에 부쳐지는 물건이 쏟아지고 있으나 투자자가 응찰을 꺼리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더 하락할 경우 경매로 낙찰하는 이점이 줄기 때문이다.

경매정보제공업체인 지지옥션는 지난달 전국 법원에서 새로 경매에 부쳐진 물건 수는 올들어 월별 기준으로 가장 많은 1만3천4백64건으로 집계됐다고 2일 밝혔다. 지난 1월 7천68건인 것에 비하면 10개월 새 90.5%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전체 경매 진행 물건 수도 지난 1월 2만3천1백44건에서 지난달에는 3만4천4백66건으로 1만1천여건이 증가했다. 지지옥션 강명관 이사는 "경매시장에 물건이 나와 입찰되기까지 3개월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의 경매 물건 급증은 하반기 이후 국내 경기 불황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천지법의 경우 최근 경매를 빨리 진행하기 위해 재입찰 일정을 종전의 유찰 후 한달에서 열흘로 앞당겼다.

반면 경매 투자 수요는 계속 줄고 있다. 지난달 서울지역 낙찰률(입찰 물건 수 대비 낙찰건수 비율)과 건당 입찰 경쟁률은 각각 29.8%, 2.9대 1로 올들어 최저치로 떨어졌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도 78.0%를 기록, 지난 3월(72.5%) 이후 8개월 만에 다시 70%대로 내려앉았다.

경매뱅크 최정윤 차장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자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라며 "한때 성행하던 '묻지마 입찰'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일 인천지법 경매14계에서 부쳐진 감정가 2천5백만원짜리 10평형 빌라는 6회 입찰 끝에 감정가의 17.2%인 4백30만원에 낙찰됐다. 지난달 25일 서울지법 북부지원 경매2계에 나온 43평형 아파트는 감정가의 58.87%인 2억6천5백만원에 주인을 찾았다.

경매 업계는 최근 들어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연체율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어 경매물건이 더욱 늘 것으로 내다본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의 경우 지난달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에 비해 30% 이상 늘어났다.

경매전문업체인 GMRC 우형달 사장은 "부동산과 내수경기 침체로 내년 상반기에는 경매물건이 지금보다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여 당분간 낙찰가율.낙찰률.경쟁률의 트리플 약세가 계속될 것"이라며 "좋은 물건이 아니면 입찰 참여를 늦추는 것이 낫다"고 충고했다.

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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