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주한 핵 이젠 불필요” 판단/미 결정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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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사찰거부 명분없애 압력강화 겨냥/재래무기·장거리핵으로 한국방위 충분
미국이 한국에 배치된 지상 및 해상핵무기에 이어 항공기탑재 핵무기도 철수키로 한 것은 한국 방위에 공군핵이 더이상 꼭 필요치 않다는 판단과 북한의 국제핵사찰 수용을 설득키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 워싱턴 포스트지와 뉴욕타임스는 19,20일 잇따라 미 정부가 주한 미군의 전술핵을 전면 철수키로 결정햇다고 미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보도하고 있다.
이같은 미 정부입장은 한국의 비핵화를 의미한다.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전세계에 배치된 핵무기의 철거와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했고 여기엔 한국에 배치된 지상 및 해상 핵무기는 포함되나 공군용 핵무기는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미국은 이같은 방침을 한국 정부에도 통보한 것으로 한국 정부가 밝혔었다.
이종구 국방장관은 국회답변에서 『지상 배치핵은 철수되어도 항공기탑재핵은 남는다』며 미군의 대한 핵우산은 지속된다고 설명한바 있다.
따라서 미 정부가 지상 및 해상 핵무기외에 공군핵무기까지를 철수 대상에 포함,한국에서 모든 핵무기를 철수키로 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핵철수 선언이래 한반도 핵문제와 관련,미국의 정책변화가 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같은 정책변화 배경의 하나는 북한을 국제 핵사찰에 응하도록 하기위한 것이라는게 미 관리들의 말이다.
북한은 85년 핵무기확산금지 조약에 가입했으나 주한미군 핵의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거부했었다. 10월초 유엔총회에 참석한 연형묵 총리와 김영남 외교부장도 『북한에 대한 핵위협이 제거될때만 핵사찰을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미국의 이번 공중핵 철수계획은 이같은 북한의 요구를 충족시켜 북한의 핵사찰수용을 설득키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미국이 한국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북한의 핵사찰을 강요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핵논의에 한국과 미국이 다같이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는 미 민간학자들과 언론들의 그동안 지적도 의미있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 스칼라피노 전 캘리포니아대 교수를 단장으로 한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평양 방문단과 미 퀘이커교 재단,그리고 뉴욕 타임스 등은 그동안 이같은 점을 지적해왔었다.
미국이 지상·해상 핵무기에 이어 한국에서 공군핵을 철수키로 한 또다른 배경으로는 한국내 핵무기가 없어도 한국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군산 미 공군기지 등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핵무기가 없어도 한반도 밖 다른 지역에 있는 장거리핵미사일이나 괌도에 있는 B­52폭격기가 탑재할 핵폭탄으로 유사시 한국을 방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또 걸프전에서 경험했듯이 정교한 재래식무기로도 한국을 방어하는데 충분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소련 쿠데타실패나 핵무기철수 발표전에도 미 군부는 한국에서의 핵무기 필요성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하고 있다.
이 신문은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핵무기를 철수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정치적인 것으로 미국이 중요한 우방을 속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한 미국 관리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미국이 지난 57년 처음으로 한국에 지상핵을 배치할 당시의 목적은 남북한간의 전쟁 재발을 방지하려는 것이었으나 그후에는 소련·중국 등에 대한 군사적 견제쪽으로 그 목적이 확대됐다.
따라서 미 부시 행정부는 소련등 공산주의 위협이 대폭 줄어든 상황을 근본적으로 이번 정책전환에 고려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이같은 설득과 압력을 수용,즉각 국제핵안전협정에 서명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북한은 핵철수 「발표」가 아니라 그 「이행」을 핵사찰 수용의 길을 여는 것으로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수시한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국의 한국내 핵무기 전면철수 계획은 유엔등 국제사회에서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라는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지난 7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실무자회의에서 한국측에 대해 이같은 전환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 미국은 다음달 20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안보회의에 참석할 딕 체니 국방장관을 통해 미 입장을 공식 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뉴욕=박준영특파원>
◎한국측 입장/미 일방주도에 언급 회피/대북 협상카드 활용 차질
한반도의 핵무기 철수에 대해 정부는 그 범위나 방식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공군 핵무기를 철수한다는 미국 신문들의 보도에 대해서도 『알고 있지 않다』며 철저히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입장은 아직까지 핵무기의 존재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않는(NCND) 기존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들이 한국보다는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하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한 공군 핵무기의 존속 여부와 관련해 이종구 국방장관은 국정감사에서 『공중발사 핵무기가 계속 잔류할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달라』고 말해 공중 핵무기는 철수대상에서 제외될 것임을 분명히 했으나 외무부 관계자들은 『부시 대통령이 잔류할 것이라고 지적한 것은 유럽배치 핵무기이며 한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고 해 공군 핵무기의 잔류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언급을 회피했었다.
이같은 부처간의 이견은 미국의 정확한 입장이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각의 희망을 섞어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던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등 군쪽에서는 공군핵무기의 잔류가 아니라도 최소한 NCND정책을 핵억지력으로 계속 이용하고 미국의 핵우산보호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1월에 차례로 방한하는 베이커 국무장관·체니 국방장관은 핵문제에 대한 미국측의 명확한 입장을 전달하고 부시 대통령의 방한때 그것을 공식화할 것이라는 예상이나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보도 또는 뉴욕타임스 보도는 이에 대한 사전예고라고 볼 수 있다는게 정부의 관측이다.
이것은 정부의 입장보다 훨씬 앞서가는 것이고 더욱이 핵문제를 남북간의 카드로 활용하려는 정부측 계산에 차질이 생기게 된 셈이다.
이처럼 한국의 구상보다 계속 앞서가는 미국의 정책은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해 미국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전술핵무기 철수 선언 이후에도 계속 자신들의 핵사찰과 비핵지대화를 연계시켰고,미국은 이것이 핵개발을 위한 시간끌기라고 해석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비핵화정책만을 고수하던 이제까지의 정책을 전면수정해야 하게 됐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미국측과의 협의가 더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공군핵무기까지 철수할 경우 한국으로선 더 이상 핵부재 선언,즉 NCND정책의 포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어지고 북한도 핵사찰을 거부할 명분을 잃게 돼 한반도를 둘러싼 핵논란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김진국기자>
◎주한 전술핵규모 백50발정도 추정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 규모는 1백∼1백50발 정도로 핵문제 전문가들이 추정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한국에 배치된 핵이 약 1천발 정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핵문제전문가 소식통에 따르면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전술핵은 세종류.
38선 부근의 춘천시에 핵탄두 탑재 가능한 랜스미사일중대(발사대 2기)가 있고 의정부시에도 핵탄두룰 적재한 4개의 유탄포·자주포 부대가 배치되어 있다.
이들 지상배치 전술핵 외에 군산·오산등 양 공군기지에는 F­16전투폭격기가 총 48대 주둔하고 있다.
이들에 탑재하는 항공기용 전술핵폭탄(약 60발로 추정)이 군산 기지내에 저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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