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고 군것질도 하는 서민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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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단돈 천원으로 꼬치안주에 대포 한잔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시장….
온갖 눈요깃거리도 푸짐하다.
포장마차와 재래시장의 향수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이른바 「풍물시장」들이 개장 1년을 넘기며 각기 성시를 이루고있다.
대폿집안주에서 청과·의류·잡화·액세서리 등을 진열한 미니 만물상들이 다닥다닥 들어차 고객을 부른다.
2년 전부터 시작된 일제단속에 이리저리 좇겨 다니던 노점상들이 정착, 무명의 거리를 명물거리로 바꾸고 「맛과 친절」을 팔고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의 신도림 풍물시장과 부천 원종동의 베르네 풍물시장. 『입주초기 주민들의 반발이 이제는 점차 동정과 이해로 바꿔어 가는 것 같아요.』
하루 50만명이 오가는 지하철 신도림역 후문 앞 광장 1천5백여평에 자리잡은 신도림 풍물시장의 자치조합장 손기철씨(39)는 『출발초기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던 풍물시장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 받게 돼 가는 것이 더없이 기쁘다』고 말한다.
서울시로부터 임대 받은 3개의 퀀싯건물에 1백13개 업소가 입주, 「목포 집」「산해진미」 「무등산」「흑산도」등 저마다 개성 있는 상호와 메뉴를 내걸고 손님 끌기 경쟁이 한창이다.
2개의 퀀싯에 73개 실내포장마차가, 1개 퀀싯에는 의류·잡화류점 40곳이 영업 중. 직업·성별·연령 구분 없이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것이 특징이다.
『처음엔 주민들의 따가운 눈총 속에 본전치기 장사에 바빴지만 이젠 하루15만원의 매상을 올리고 있어요.』 실내포장마차 「영산강」주인 민경분씨(42·여)는 『무엇보다 단속의 불안이 없어 살 것 같다』고 2년전 거리 포장마차 시절을 회상했다.
특히 안양·부평 등지에서까지 단골들이 찾아올 땐 피로가 말끔히 가신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신도림 풍물시장이 거리의 명물로 「정착」하기까지엔 많은 노력이 있었다.
주민들의 시장개설 반발을 무마키 위해 상인들은 지난 겨울부터 4∼5명씩 7개조로 자율방범대를 조직, 매일 오후11시부터 오전6시까지 동네방범 순찰을 벌이는 한편 아침나절엔 주변 교통정리까지 했다.
조합 측은 특히 개장 1주년을 맞은 지난14일에는 시장앞마당에서 2백60여명의 동네노인을 초청, 음식과 술을 대접하는 경로잔치를 벌였으며 15일부터 나흘동안은 매일저녁 주민노래자랑 대회를 여는 등 주민과의 화합에 힘 쏟고있다.
『대합·꼼장어·오징어 등 해산물에서 닭똥집·참새·숯불갈비까지 온갖 안줏거리를 조금씩 맛보는 게 일과가 됐어요.』
친구와 함께 이곳을 찾은 이 동네 김종만씨(44·회사원) 는 『주민들은 아량을 베풀고 상인들은 깨끗하고 값싼 음식을 제공하면 신도림 풍물시장은 명물로 남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천 베르네시장도 신도림시장과 쌍벽을 이루며 성업중이다.
복개한 베르네천 위에2∼3평까리 점포 1백79개와 반평이 조금 넘는 좌판 94개가 열지어선 채 만물을 판다.
떠돌이 노점상들이 모여 지난해3월 개강한 이래 빈터였던 주변에 아파트·연립주택 등이 들어서며 손님이」모이기 시작했다. 『입주상인들이 시중보다 10∼20%씩 싸게 팔면서 특히「친절」을 모토로 고객을 모신 게 효과를 본 것 같아요.』 시장번영회 부회장 문정녹씨(35·빵집운영) 외 성공담이다.
이들 노점상들을 위해 부천시는 8억3천만원을 들여 하천복개 및 관리사무소·3개의 현대식 화장실·공동상수도시설 3곳·가로등 22개 등을 설치하고 입주상인들에게 1백만원씩 정착금을 융자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음식 맛·물건품질이 좋고 다양하면서도 값이 싸 주부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인근에 사는 주부 김은지씨(38·여월동)는 이웃주부들과 1주일에 서너 차례는 이곳에 들러 장도보고 군것질도 한다고 말했다. <김정배·홍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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