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영실태(중) "투자 앞서 「조국」익혀라" 교포 경협전에 선심관광 1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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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주교포 산업시찰단은 9월10일 평양에 도착한 후 6일 동안은 사업과 관련된 아무런 일정을 갖지 못했다.
만경대·주체탑·금강산·동명왕릉 등 북측이 정해놓은 관광코스만 다녔다.
북한 방문객들은 모든 일정에 앞서 먼저 김일성 주석의 만경대 생가를 방문토록 돼있다. 재미경련 회장단 측은 이곳을 방문하기에 앞서 『예의상 정장을 하라』고 회원들에게 부탁했다.
일부 회원들은 관광일정이 근 1주일이나 계속되자 『우리가 사업하러 온 것이지 관광하러 온 것이 아니다』며 조바심 속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측과 이곳에서 사업 경험이 있는 경제인들은 대북 투자는 북한이 「조국」이라는 전제하에서 우선 피상적이나마 조국의 분위기를 익히고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를 맺어가며 차근차근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인 듯 했다.
재미경연 산업시찰단의 본격적인 산업관련 일정은 입북 7일째인 9월16일 오전 김창길 합영공업 총국 대상 심의국장의 합영 설명회로 시작됐다.
김국장은 설명회에서 북측이 미주교포들의 「조국내 합영합작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을 세웠음을 분명히 하고 약 1시간30분에 걸쳐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그는 이날 「명함장」을 돌리기도 했다. 요즈음 북한의 사업담당자들은 모두 영어·조선어로 양면 인쇄된 명함을 갖고 다닌다.)
재미사업가들은 김국장과 만난 뒤 피복공장·피아노공장·보세가공 공장(보석류) 등 평양의 모범공장들을 시찰했다. 시찰하면서 합작사업 아이디어를 구상, 관계부문 담당자들과 만나 각자의 사업계획을 논의했다.
기자가 경제인단과 함께 방문한 3개 공장 중 피복·피아노 공장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조총련계와의 합영회사이며 보석공장은 대성총국의 계열사이다.
피복공장=「모란봉 합영회사」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평양시내의 피복공장. 9백47명을 고용하고 있는 대규모 6층짜리 봉제공장으로 여성 옷·남성양복·점퍼 등을 생산하고 있다.
88년 9월4일 재일 교포와의 합영으로 10년 계약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해에 여자 블라우스 21만벌, 남자 기성복 15만벌, 점퍼 15만벌 등을 일본에 수출해 북한·조총련 양측이 처음으로 각각 30만달러씩 (총60만달러)의 이윤을 올렸다.
투자금액은 양측 12억엔씩 총 24억엔.
북한에서의 조업을 관리하는 신상만 영업부장(52)은 모란봉 합영회사가 일본으로부터 수입해온 천을 가공한 완제품을 일본에 다시 수출하고 있으며 일본시장에서의 판매는 새일 조총련측이 맡고 있다고 밝혔다.
모란봉합영회사는 JUKI재단기·바느질기계 등 일제 최신형 기계들을 설비로 갖추고 있으며 조업라인의 체계가 잡혀있어 바닥에서 실오라기 하나를 보기 어려울 만큼 깔끔하게 운영되고 있다.
LA에서 종업원 1백명 규모의 바지공장을 운영하는 한 재미사업가는 공장을 돌아보면서『LA에도 이처럼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공장이 없다』며 『이러한 시설과 기술은 일본에서도 수준급으로 친다』고 평가했다.
이 공장 3층에서 만드는 세무점퍼는 1밸에 70달러에 일본으로 수출.
소매가격 1백50∼2백달러에 팔리고 있다고 신부장이 밝혔다.
공장작업실 벽에는 직원들의 개인별 생산량·출근율·청소 및 봉사실적을 기록하는 「사회주의 경쟁도표」가 붙어 있었다.
직원들이 받는 노임(임금)은 월 1백∼1백만원(약 68달러)정도이며 경력과 생산성 및 맡은 일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한다.
◇피아노 합영회사= 89년 설립돼 올해 4월부터 PACO(평양 악기컴퍼니)라는 상표로 일본에 다양한 모델들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재일 조선대학교 동창인 조총련 상공인 4명이 설립한 이 회사는 본사를 일본에 두고 있으며 북한과 조총련이 각각 4백만엔을 투자, 평양공장을 설립해 불과 2년만에 혹자로 돌아섰다.
북한측 대표인 최윤선부사장(55·음악인)은 평양 피아노 합영회사가 자강도 림산(산림) 업 총국을 통해 국내 목재를 조달하고 있으며 접착제·피아노 줄 등은 일본으로부터 수입하고있다고 밝혔다.
최부사장은 지난 4월부터 9월까지의 판매실적이 『상상외로 좋았다』며 『매달 판매량이 늘고 있으며 판로가 지금 막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규모가 연 1천5백∼2천대이며 2가지 모델, 2가지 색깔로 만들고 있는 PACO피아노는 이미 일본에서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9월말에는 최근 개발한 신제품 30종을 일본박람회에 전시하기도 했다.
최부사장은 현재 일본에서의 경쟁·가격현황에 대해 『야마하의 동급형에 비해 5%정도 싼 반면 남조선 제품이나 가와이(KAWAI)에 비해선 약간 비싸게 팔리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종업원 수는 3백명이며 한창 시설확장 중이다.
한가지 특기할만한 것은 대패작업장에서 나오는 톱밥을 진공식 파이프로 재생시켜 건조기연료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면서도 북한의 에너지사정의 단면을 보는 듯 했다.
보석가공공장(보석류)= 보통강구역에 위치한 대성총국 제 5무역상사.
반지·브로치·귀고리·목걸이 및 장식용 공예품 등을 생산, 주로 사회주의 국가에 수출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국가로는 프랑스·호주 등에 보석을 수출하고 있다고 대성무역상사의 홍순정 부총사장이 밝혔다.
이 공장의 각종 부문 중 다이아몬드(금강석) 가공만 벨기에와의 합영사업으로 하청, 가공품을 생산하고 있다.
75년 설립된 제 5상사는 7백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연간 매출액은 1백만 달러. 【평양=김명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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