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극장가가 방화 "밀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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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만추의 극장가가 한국영화로 대단히 풍성하다.
10월 하순∼12월초순은 원래 영화계의 비수기.
힘 센 극장주들이 힘 약한 한국영화를 찾아주는 시즌이다.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인 스크린쿼터도 채우랴, 연말대목 외화도 준비하랴, 적당한 한국영화로 적당히 때우는게 상례다.
그러나 극장측 사정이 그렇든 말든 올 가을 한국영화는 파이팅이 넘친다.
추석전후 개봉된 방화들이 외화들을 제친데다 잇따라 뚜껑을 연 방화들로 관객동원이 순조롭다.
또 이번 주부터 개봉된 것과 뒤이어 선보일 방화들에도 관객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추석프로인 『사의 찬미』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10월초 개봉된 『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이번 주 초 관객 10만명을 넘어섰다.
다만 임권택 감독의『개벽』만이 예상보다 일찍 종영, 안타까움을 샀다.
『개벽』은 장면 하나 하나마다 정성을 다한 스태프·출연진의 열의가 눈에 보였으나 「재미」의 결여로 비운을 맛봤다.
영화계는 시나리오가 동학사상의 영상화보다 동학사상의 해설에 가깝게 구성된 것이 작품완성도에 상처를 주고 흥행실패를 가져온 것으로 보고 있다.
『개벽』은 또 오락적 재미에만 주로 몰리는 한국 관객의 취향을 다시 확인해준 씁쓸한 여운도 남겼다.
그러나 임권택 감독은 올해 『장군의 아들2』로 서울개봉관에서만 60만 여명의 관객을 모아 같은 이름의 영화 1·2편으로 2년 연속 최다 관객동원 감독이란 초유의 기록을 세울 것이 확실하다.
『사의 찬미』등에 이어 10월중 개봉된 『복카치오 91』 『인간시장3』도 그런 대로 극장 안이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핸드백 속 이야기』 『아그네스를 위하여』 2편이 한국영화 붐을 일으키는데 가세한다.
『아그네스를 위하여』는 지난해 『물의 나라』를 히트시킨 유영진감독의 미국 로케 작품이다.
일간지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당선작 『그에게로 이르는 먼길을 영상에 옮긴 이 영화는 이국생활을 못 견뎌 파국을 맞는 미국 유학생 부부의 이야기로 사랑하는 남편을 정당방위로 살해했지만 그 사랑의 증거로 법정사형 선고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충격적인 내용이다.
도미결혼·파경소동을 빚은 최수지가 재기작으로 선택해 열연했다는데 최양은 이석기 감독의 알래스카 로케영화 『땅 끝에 선 연인들』에도 캐스팅 돼 본격적인 연기생활에 다시 들어갔다.
『아그네스를 위하여』에는 최민수·정보석이 남자주연을 맡았다.
『핸드백 속 이야기』는 이장호감독이 제작을, 송영수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로 성폭행이 여성의 성 심리에 미치는 악독성을 짚어보고 그것을 사랑으로 치유하는 모습을 그린 에로영화다.
11월부터 선보일 한국영화는 더욱 증량급들이 대기하고 있다.
박철수감독의 『데레사의 연인』, 배창호 감독의 『천국의 계단』, 고영남감독의 『나의 아내를 슬프게 하는 것들』, 김현명감독의 『서울의 눈물』 등 중견감독들의 이 영화들이 개봉될 때 한국 영화 붐이 최고조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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