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없는 촌놈” 종업원 말에 분개/20대 휘발유 뿌리고 불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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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전속 밟고 밟힌 “필사의 탈출”/거의 질식사… 백여명 출구 몰려/대구 방화사건/영농후계자 범인 현장 검거 6명은 중상
【대구=임시취재반】 17일 오후 9시50분쯤 대구시 비산4동 333 농춘빌딩지하 거성관 나이트클럽(주인 양귀영·49)에서 술을 마시러갔던 영농후계자 김정수씨(29·경북 금릉군 부항면 두산리)가 『종업원들이 푸대접한다』는 이유로 6ℓ들이 플래스틱통에 든 휘발유를 무대에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질러 춤추던 손님 윤복수씨(42·대구시 송현동 주공아파트)등 16명(남자 7명·여자 9명)이 연기에 질식돼 숨졌다.
또 양혜진씨(27·여)등 손님 4명,구조작업을 벌이던 소방관 박광명씨(40·중부소방서 특별구조대)등 모두 6명이 중상을 입고 동산의료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화재당시 지하홀에는 1백여명의 손님들이 춤추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으며 불이나자 서로 먼저 뛰쳐나가려다 테이블·의자에 걸려 넘어지며서 뒤엉켰고 홀내부의 정전으로 어둠속에서 출입구를 제대로 찾지 못한데다 두곳뿐인 출입구로 몰린 사람들마저 계단이 가파르고 좁아 대피가 늦어져 질식사하는등 인명피해가 컸다.
불이난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 7층 빌딩 지하실로 김씨가 휘발유를 뿌리고 지른 불은 2백67평의 홀내부로 삽시간에 번져 발화 40분만에 내부를 모두 태웠다.
불이 나자 대구시내 소방차 30여대와 1백50여명의 소방관들이 긴급출동,진화작업을 벌였으나 나이트클럽에서 유독성 매연이 뿜어나오고 비좁은 출입구때문에 인명구조에 어려움을 겪었다.
범인 김씨는 불을 지르고 나이트클럽을 빠져나가려다 출입구에서 검거됐다.
경찰은 화재당시 발생한 정전사고는 종업원 권오만씨(24)가 누전으로 불이 번질 것을 막기 위해 전원스위치를 껐기 때문으로 밝혀내고 권씨를 불러 정확한 경위를 조사중이다.
◇방화=영농후계자인 김씨는 이날 오후 4시쯤 금릉군에서 대구로 와 친구 김충화씨(32·대구시 감삼동 198·개나리식육점경영)등 3명과 만나 인근 금성막창구이집에서 맥주 8병을 나눠 마신뒤 오후 6시30분쯤 헤어져 혼자 거성관 나이트클럽에 들렀다.
그러나 출입구에서 종업원들이 『돈도 없는 촌놈이 들어온다』며 『나가라』고 제지하자 인근 태양주유소에서 3천원을 주고산 6ℓ들이 휘발유통을 들고 10분후쯤 후문을 통해 들어가 고객들이 춤추고 있던 무대앞에서 서성거리다 불을 지르고 정문출입구로 달아나다 현장출동중이던 서부경찰서 비산파출소 김원재 순경(23)에게 붙잡혔다.
◇현장=손님 박승호씨(43)에 따르면 무대에서 10여m쯤 떨어진 좌석에 앉아 술을 마시던중 『불이야』하는 고함이 터져나와 1백여명이 정문·후문 출입구쪽으로 몰려 1층계단으로 서로 먼저 오르려다 넘어지고 짓밟히는등 아수라장이 됐다는 것.
종업원 김명식씨(30)는 『초저녁에 2백여석의 좌석을 꽉메웠던 나이트클럽에는 사고당시 1백여명이 남아 춤추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으며 갑자기 「불이야」하는 고함과 함께 무대 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음악이 멈추면서 전기마저 꺼져 암흑천지를 이뤘다』고 말했다.
◇구조=출동 경찰·소방대원들은 정문·후문등 두개의 출입구에서 비좁은 계단에 몰려 있는 사람들을 차례로 끌어내는등 대부분 구조했으나 미처 손을 쓰지 못해 질식사한 윤씨등 사망자·중상자들을 인근 병원으로 옮겨 분산 수용했다.
현장주변을 순찰하다 맨처음 현장에 달려간 건물경비원 박상해씨(65)는 『뒤엉킨 사람들이 서로 손을 내밀고 고함을 지르며 구조를 요청했으나 한사람 잡아당기면 뒷사람이 따라나오려고 서로 붙잡는 바람에 구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사망자◁
◇영남대의료원 ▲장대환(40·대구시 신천동) ▲주종원(37·대구시 지산동 보성아파트) ▲권순연(57·여·대구시 대명10동 1622의 45) ▲김순희(29·여·대구시 수성동1가 645의 1) ▲서상우(26·경북 영천군 화산면) ▲신금안(47·여·대구시 송현1동 산 24) ▲변동하(28·여·대구시 방촌동 113의 8) ▲조점순(36·여·대구시 신천동) ▲박춘자(50·여·대구시 신천2동 556의 49)
◇경북대 부속병원 ▲윤복수(42·대구시 송현동 주공아파트) ▲김정옥(62·여·대구시 신천동 47) ▲김귀희(29·여·대구시 이천2동 280의 39)
◇동산의료원 ▲황성환(32·대구시 대명동) ▲홍연주(57·여·대구시 내당1동 212의 16) ▲김현수(33·대구시 이곡동 700)
◇대구의료원 ▲배태윤(43·대구시 매천동 498의 1)
▷부상자◁
◇동산의료원 ▲김월생(67·여·대구시 두류3동 486) ▲신인순(50·여·대구시 대신2동 336) ▲권은향(30·여·대구시 황금동 474) ▲양혜진(27·여·대구시 성당1동 487) ▲중부소방서 특별구조대 김건설(33) ▲동 박광명(40)
◇임시취재반=이용우부장,김영수차장,김선왕·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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