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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들, 숲에서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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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임종국이라는 한 독림가가 수십 년 세월 동안 홀로 569㏊에 걸쳐 편백나무와 삼나무 등 253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어 일군 이 기적 같은 숲에 와서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겠다는 대선 주자들은 적어도 네 가지는 생각해야 한다.

첫째, 대한민국의 미래를 먹여 살릴 수종(樹種)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숙고하라. 자기 이름 그대로 '숲[林]의 씨[種]가 되어 나라[國]에 기여한' 임종국 선생은 심기 쉽고 번식도 빠른 아까시나무 대신 식목이 쉽지 않아 아무도 선뜻 심으려 하지 않았던 편백나무, 삼나무만을 고집해서 심었다.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 보면, 여기저기 구부정하게 제멋대로 자란 아까시나무는 그저 찍어낼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곧게 높이 자란 편백나무.삼나무는 경제적.환경적 가치 모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우뚝 서 있다. 결국 어떤 수종을 선택해서 심을 것인가 하는 판단과 결심이 숲의 미래를 결정한다. 나라도 다르지 않다.

둘째, 세월에 영합하지 말고 새 기풍을 진작하라. 임종국 선생이 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부터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당시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나무를 잘라 땔감으로 쓰기 바빴다. 심지어 뿌리마저 뽑아내 땔감으로 쓸 만큼 나무의 씨를 말리던 시절이었다. 그런 때에 애써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한마디로 세상을 거꾸로 사는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임종국 선생이 세월에 영합하지 않고 남들이 비웃는 '미친 짓'을 했기에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황홀한 숲이 있는 것 아닌가. 지금 우리가 사는 형편은 50년대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아졌다. 하지만 뿌리마저 뽑아내서 땔감으로 썼듯 나라의 정신적 근간이 허하다 못해 거덜이 날 지경이란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 임종국 선생이 돈과 땀을 쏟아 황무지 위에 애써 나무를 심었듯이 다시 이 정신적 황무지 위에 새 정신, 새 기풍을 심는 리더가 나와야 한다.

셋째, 숲을 통해 진정한 인재 양성법을 배워라. 숲은 고요한 듯하지만 엄청난 경쟁의 장이다. 나무들의 경쟁 없이 숲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결국 숲은 나무들의 소리 없는 경쟁의 산물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내일을 책임지고 싶거든 먼저, 아이들을 잡목더미로 만드는 오늘의 불모지 교육을 타개하라. 아울러 교육백년대계를 근본부터 다시 세울 구상과 방도를 숲에 가서 깨치고 배워라. 그 핵심은 다름을 존중하되 진짜 경쟁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넷째, 지금의 자기를 넘어서라. '나무'는 '나(余) 무(無)' 즉 '나 없음'이다. 자고로 진짜 리더는 남들 앞에 내세우려는 나를 넘어서야 한다. 진정으로 위대한 리더십은 자기를 없애고 자기를 던져서 전부를 살리겠다는 홀연한 각오다.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집착해 '나무(나 없음)'가 아니라 '나유(나 있음)'만을 목청 돋우는 한 우리 모두의 숲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진정한 리더는 독야청청하는 한 그루 소나무로 자족해선 안 된다. 자기 처지를 넘어서서 다른 생각, 다른 입장들과 어우러져 숲을 이루는 진정한 겸허와 화합의 원리를 깨치고 배워야 한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