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소리 나는 일본 바둑 … 상금은 '억'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2월 23일 일본 기성전에서 야마시타 게이고(山下敬吾) 9단이 노장인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 9단을 4대 0으로 꺾고 우승했다. 그 다음날인 24일엔 한국의 맥심배에서 이세돌 9단이 박정상 9단을 2대 1로 꺾고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근래 수년간 한국기사들은 일본 기사들을 거의 '밥'처럼 여겨왔다. 그런데 야마시타가 기성전에서 받는 상금과 대국료의 합계가 이세돌이 맥심배에서 받는 상금의 20배가 넘는다는 사실에 문득 놀라게 된다. 세계바둑은 아직 돈 버는 것과 실력이 별개인 동네다.

일본 기성전은 일본 7대 기전의 으뜸이어서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자동적으로 일본 서열 1위에 오르게 된다. 우승상금은 4300만 엔. 엔화가 약세임에도 3억2000만원 정도가 되니까 상금에선 세계 최대라 할 수 있다 . 더구나 거액의 도전기 대국료가 따로 지급되고 다른 대회에 나가도 인센티브가 따른다. 다음해 도전기를 둘 수 있는 권리 등을 환산하면 실제 혜택은 상금의 두 배, 즉 6억4000만원쯤 된다고 한다. 과거 기성전 5연패를 달성했던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 9단이 "나는 일년에 네 판만 이기면 된다"고 호언했던 것도 기성전만 우승하면 일년 농사가 끝나기 때문이다.

일본은 명인전과 본인방전 등 기성전보다는 약간 작지만 거의 비슷한 규모의 기전이 두 개 더 있어 이들을 3대 기전이라 부르고 이어서 7대 기전까지 상금으로 쭉 서열이 매겨져 있다.

일본 바둑이 침체라는 것은 바둑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일본 기사들의 실력도 물론 한국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기성전 우승자로 일본 서열 1위인 야마시타만 해도 한국 기사들에게 11승16패를 기록하고 있다. 조훈현 9단에게 3전3패, 이창호 9단에게 3전3패, 최철한 9단에게 2전2패, 이세돌.유창혁 9단에게 1전1패 등 한국 정상급 기사에겐 거의 전패를 기록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세계대회 성적도 8강이나 16강에 그치고 있다(일본이 자국 바둑대회의 오픈을 결단코 거부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한국 바둑이 이런 성적이라면 국내 바둑대회는 이미 지리멸렬이 되었을 텐데 일본의 7대 기전과 기타 많은 대회는 기업과 언론사들의 후원 아래 끄떡없이 유지되고 있고 세계 상금랭킹 1위 자리는 거의 매번 일본 기사가 차지하고 있다.

기왕 언급됐으니 맥심배 우승상금을 밝히면 2000만원으로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최근에 국내에도 우승상금 1억원의 강원랜드배 명인전이 생겨났지만 그 이전까지는 5000만원이 최고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