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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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호 하사의 어머니가 1일 쿠웨이트 무바라크 미 공군기지의 임시 분향소에서 통곡하고 있다. [쿠웨이트시티=서정민 특파원]

"아들아, 아들아…. 말을 해봐라. 장호야, 장호야…."

1일 오후 1시(현지시간) 쿠웨이트 무바라크 미국 공군기지. 지난달 27일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숨진 고(故) 윤장호(27) 하사의 어머니 이창희(59)씨는 무바라크 기지에서 냉동 상태로 보관된 아들의 시신을 마주하자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복받치는 설움으로 아들을 한없이 부르지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윤 하사는 말이 없었다.

이씨는 "장호야, 엄마가 너와 길게 사랑을 나누지 못한 게 정말 미안하다. 이제 봉오리가 활짝 피는 꽃이 되어야 하는데 피워 보지도 못하고 떨어졌구나"라며 울먹였다. 이씨는 이어 "장호야,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용서해줘…"라며 얼굴을 감쌌다. 윤 하사의 아버지 윤희철(65)씨는 "미국에서 공부하느라 13년을 떨어져 살았는데 이렇게 얼굴도 못 보고 가버리면 어떡하란 말이냐"며 오열했다.

윤 하사의 부모는 이날 류홍규(공군 준장) 합참 인사부장을 단장으로 한 유해 인수단과 함께 자이툰 부대 교대 병력을 실은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쿠웨이트 무바라크 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도착 즉시 무바라크 기지 임시 보관소에서 윤 하사의 유해를 확인했다. 윤 하사의 유해는 지난달 28일 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서 미군 수송기(C-17) 편으로 무바라크 기지로 운구됐다. 곧이어 기지 내 임시 분향소에서 거행된 추도식에는 윤 하사의 부모와 인수단 외에 윤 하사가 근무했던 다산부대 장병 등 수십 명이 참석했다.

추도식에서는 윤 하사의 손때와 숨결이 묻어 있는 수첩.카메라. 안경.옷가지 등 59개의 유품이 유족에게 전달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신을 운구해온 다산부대 장병은 윤 하사가 아끼던 색소폰과 그의 시신을 처음으로 덮었던 태극기를 아버지 윤씨에게 직접 전달했다. 추도식 내내 감정을 억누르던 아버지는 찬송가를 부르다 끝내 통곡했다. 뒤이어 윤 하사의 영정을 부둥켜안고 얼굴을 비비며 한참 동안 내려놓지 못했다.

눈물의 추도식이 끝난 뒤 냉동 컨테이너에 보관됐던 윤 하사의 유해가 전세기편에 실렸다. 윤 하사의 유해는 2일 오전 7시30분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져 장례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육군은 유족과 협의해 5일께 특전사부대장으로 장례를 치를 방침이다.

◆정부, 인헌무공훈장 추서=육군은 지난달 28일 전사상심의위원회를 열고 고 윤 병장을 전사자로 처리하고 한 계급 올려 하사로 추서했다고 1일 밝혔다. 또 정부는 윤 하사에게 인헌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이에 앞서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인 데이비드 로드리게스 소장도 28일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윤 하사에 대한 추도식을 마친 뒤 동성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이 훈장은 전공을 세운 외국 군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훈장이다.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윤 하사의 유족과 김장수 국방부 장관에게 서신을 보내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봉사, 범세계적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윤 하사의 헌신은 고인의 유산으로 남을 것"이라며 "주한미군 전 장병을 대표해 진심 어린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했다.

◆세 번 도전 끝에 파병=윤 하사는 지난해 군 생활을 더욱 뜻깊게 보내기 위해 해외 파병 장병 선발에 지원했다. 그러나 그는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시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세 번째 도전해 다산부대 8진 요원으로 최종 선발됐다.

윤 하사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뒤에도 미군과의 전체 참모회의에서 한 주 동안의 부대 활동상을 브리핑하고 일일 브리핑, 상황회의, 각종 협조회의에서 통역을 담당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현지인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민사반의 통역 임무를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난해 12월 말 공사 시공자 중급과정 교육을 완벽하게 준비해 미군 지방재건단(PRT) 사령관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윤 하사는 다산부대 내에서도 모범 장병으로 선정돼 5일 국기 게양식 때 표창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는 미국 뉴욕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탁월한 학업성적과 교내 봉사활동 등으로 클린턴 대통령상을 받아 한국인의 우수성을 알리기도 했다. 고등학생이면서도 한국에 있는 어머니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어머니의 쾌유를 빌기 위해 삭발하고 기도한 적도 있다고 육군 관계자가 전했다.

쿠웨이트시티=서정민 특파원
서울=김민석 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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