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위안부·신사참배 성의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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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사진) 대통령의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 수위가 낮아졌다. 노 대통령은 1일 "(일본은) 무엇보다 역사적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실천이 필요하다"며 "역사 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같은 문제는 성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 할 게 아니라 양심과 국제 사회에서 보편성을 인정받고 있는 선례를 따라 성의를 다해주기 바란다"고도 했다. 할 말은 하면서도 표현 강도를 완곡한 외교 화법으로 낮췄다. 노 대통령은 "우리는 일본과 사이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한다"는 전제도 깔았다.

지난해 '일본 국가 지도자'를 지칭하며 "사과를 뒤집는 행동을 반대한다"고 직설적인 표현을 쓴 것과 다른 기류다. 특히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기습 참배한 2004년 3.1절에 "우리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발언을 적어도 국가 지도자의 수준에서 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비난한 일도 있다.

재임 중 마지막 3.1절 기념사에서 대일 비판의 수위가 낮아진 데 대해 정부 관계자는 한.일 두 나라 정치 환경의 변화를 꼽았다. 고이즈미 전 총리 이후 들어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일본인 납치 문제 등과 관련해 대북 관계에서 강경론을 고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신사 참배 등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 입장에선 북핵 문제와 관련한 2.13 베이징 합의를 계기로 평화체제 정착을 위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외부 요인이 없다는 점 등이 기념사에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양국 외교 라인에선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를 빼고 중단돼온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싹트고 있다.

노 대통령은 또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한.일 관계에 대한 언급을 줄인 대신 "우리의 역량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국방 개혁과 전시작전권 전환을 통해 자주방위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등 '자주'를 강조했다.

박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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