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정부 추진 '경제자유구역' 개발 사업 100점 만점에 52.8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100점 만점에 52.8점'.

"동북아 중심 국가를 만들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전에 따라 추진돼온 경제자유구역 개발사업의 현주소다. 더욱이 이 점수는 외부인이 평가한 게 아니다. 개발사업을 맡고 있는 3대 경제자유구역청의 공무원이 스스로 매긴 점수다. 경제자유구역 개발의 열쇠인 외자 유치에 대해서도 10명 중 6명이 '비관적'이라고 답했다. 이는 국회 예산정책처가 인천, 부산.진해, 광양 등 3대 경제자유구역청에서 일하는 330명의 공무원을 면접조사해 1일 공개한 것이다.

여기에다 부동산 정책도 경제자유구역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주택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가 경제자유구역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국내 부동산 투자를 중개하는 콜리어스 인터내셔널의 윤재훈 이사는 "잦은 부동산 정책 변화 때문에 한국에 관심을 보이던 투자가도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이 동북아의 허브가 되기 위해선 경제자유구역만이라도 허브에 걸맞은 투자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담당 공무원조차 회의적=국회 예산처에 따르면 경제자유구역의 6개 사업 분야 가운데 해운.항만.물류 사업을 빼고는 모두 60점을 밑돌았다.

특히 국제 금융단지 시설 개발은 40점대였다. 사업 성패의 관건인 외자 유치에 대해서는 '매우 안 되고 있다'(12.7%)와 '안 되고 있다'(50.6%)는 응답이 전체의 63%에 달했다. 외자 유치 추진 실적도 45.6점으로 담당 공무원 스스로 낙제점수에 가까웠다고 인정했다.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를 위해 보완할 정책으로는 55.2%가 '규제 완화'를 꼽았다.

◆부동산 정책도 발목=모건 스탠리는 올 1월 말 인천 송도 신도시 개발을 맡고 있는 송도개발유한회사(NSC)와 3억5000만 달러의 투자 계약을 했다. 정부는 이를 송도 신도시에 대한 첫 외국인 투자라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지난달 1일에는 모건 스탠리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65층짜리 동북아무역센터 착공식도 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록 모건 스탠리는 1차로 약속한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지 않고 있다. 무역센터와 패키지로 계약한 GS자이의 아파트 분양이 연기되고 있어서다. 경제자유구역 개발 사업은 위험이 큰 사무실 빌딩.컨벤션센터 등 상업시설과 안정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아파트.주상복합 등 주거시설을 패키지로 묶는 방식으로 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11.15 대책 후 올해 1.11과 1.31 대책이 연달아 나오면서 아파트 분양이 연기되자 모건 스탠리도 투자를 미루고 있는 것이다. 9월부터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가 도입되면 아파트 분양사업의 기대수익률이 떨어져 외자 유치 가능성도 더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세제 혜택 늘려야=세금이 전혀 없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나 인건비가 싼 상하이(上海)의 푸둥(浦東), 영어 구사 인력이 풍부한 싱가포르와 한국이 경쟁하자면 금융.세제 혜택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규제를 혁파해야 한다고 국회 예산처는 분석했다.

투자 유치를 맡고 있는 NSC 관계자도 "현재 세제 혜택은 제조.물류.관광업으로만 제한돼 있어 다양한 서비스업체의 투자 유치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각종 혜택에 대한 홍보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경제자유구역에 입주한 외자기업 72개 가운데 27개는 소득세.법인세 혜택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경민 기자, 원동희 중앙데일리 기자

◆경제자유구역=동북아 중심 국가 건설을 위해 정부가 국제 공항.항만을 낀 곳에 지정한 경제특구다. 이곳에서는 외국 기업에 대한 세제 지원, 노동 관련 규제 완화, 대외문서의 영어 작성, 외국 학교.병원.약국의 진출 허용, 별도의 특별행정기구 설치 등의 제도가 운영된다. 현재 인천, 부산.진해, 광양 등 세 곳이 지정돼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