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느낌!] 거짓 없는 몸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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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 혹은 반라의 모델들이 서 있다. 얼굴과 몸의 창백한 화장은 마네킹을 연상시킨다. 획일적인 액세서리와 하이힐을 착용하고 꼼짝도 않고 서 있다. 하지만 몇시간이 흐르면서 자세가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피로해지면 하나 둘 주저 앉기 시작한다. 시간이 더 흐르면 여기저기 드러눕는다.

관객은 처음에 눈요기를 시작한다. 모델이 대개 누드일 뿐 아니라 의상과 액세서리는 마틴 마르지엘라, 알베르타 페레티, 이브 생 로랑, 마놀로 블라닉 등 세계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그러나 모델들이 피로에 지쳐 앉거나 눕기 시작할 때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획일화된 치장의 분위기가 벗겨지고 거짓과 왜곡이 없는, 몸 그 자체의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다. '꾸며진 몸에서 거짓 없는 몸으로'의 변화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퍼포먼스 작가 바네사 비크로프트(38)가 연출해 온 장면들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에로틱한 분위기와 초현실적인 긴장감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그는 1993년 이래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컨셉트로 60회의 행위예술을 보여 줬다. 지난달 26, 27일엔 서울 신세계 백화점 본점 재개관 기념으로 한국 퍼포먼스도 열었다.

바네사의 대규모 회고전이 지난달 28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 갤러리에서 개막했다(3월 25일까지, 02-3217-0878). 기존의 퍼포먼스를 통해 제작된 사진 40여 점과 최근의 조각작업, 그리고 퍼포 먼스를 기록한 영상 6편을 보여 준다. "포르노와 광고 사진을 결합한 것같다" "여성의 몸을 상품화한다"는 일부의 비판이 독자들에게도 와 닿는지 느껴볼 기회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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