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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월광 소나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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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Canon EOS-1Ds MarkⅡ 70-200mm f5.6 1초 ISO 400

10여 년 전 한 선배가 "바다에서 달이 떠오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단 한번도 못 본 것이라 귀가 솔깃했습니다.

"수평선에서 샛노랗게 솟아오르기 시작한 달은 막 세수를 한 아기처럼 말갛거든. 그렇게 해맑은 건 여태 본 적이 없어. 그리고 수평선에 걸려 막 하늘로 오르는 달은 마치 바다에 세숫물을 뚝뚝 흘려놓는 것만 같아. 아주 오래전 딱 한번 봤는데 그만 가슴에 맺혀 버렸지 뭐야. 자네, 사진으로 찍어 보여줄 수 없겠나." 그 얘기를 들은 뒤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바다를 찾았습니다. 일출 사진은 제법 찍어 봤으니 월출 또한 쉽게 찍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수평선에서 말갛게 오르며 바다를 밝히는 보름달은 지금껏 구경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달이 둥글게 보이는 음력 15,16일에 해가 진 뒤 비로소 달이 떠오르는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날은 일 년에 고작 두세 번입니다. 게다가 날씨마저 아주 맑아야 하니 여간해선 보기 어려운 장관입니다.

지난 음력 12월 보름 그리운 임 찾듯 동해바다로 향했습니다. 시리도록 푸른 날이라 잔뜩 기대를 품었습니다. 그러나 서산으로 지는 붉은 노을이 짙푸른 이내에 물들어 가도록 '임 그리워 뜨는 12월의 달'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수평선에 짙게 내려앉은 해무에 달이 가려진 탓입니다. 해무를 벗어나서야 모습을 드러낸 달은 얄밉도록 휘영청 합니다. 고고하게 비치는 달빛은 은비늘 마냥 반짝이며 밤바다에 한 줄 길을 냅니다. 말갛게 수평선에 오르는 달은 못 봤지만 밤바다에 은은하게 비치는 한줄기 달빛 길이 아련히 가슴에 맺힙니다.

3월 4일이 정월 대보름입니다. 강릉을 기준으로 일몰은 오후 6시20분이고 월출은 오후 6시40분쯤입니다. 날만 맑다면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달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듯합니다. '달타령'엔 정월에 뜨는 달을 '새 희망을 주는 달'이라 합니다. 새 희망을 품고 두둥실 떠오르는 월출 사진에 도전해 보세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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