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때도 없는 선거운동병/노재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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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일간 대전·충남북지역을 주마간산격으로 돌면서 우리의 선거풍토와 「정치비용」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후보자 등록이 끝난 때부터 선거일 전날까지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는 국회의원선거법 조항은 이미 사문화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느낌이다.
각종 지역문화제,군민체육대회,간담회,주부대학 등의 행사가 연이어 열렸고,해당지역구의 출마희망자들은 행사장마다 나타나 얼굴을 알리고 악수하기에 바빴다.
14대 총선까지는 줄잡아 5개월이나 남아있는 시점이다.
충북지역의 한 「예비후보」의 사무실에는 10일자 일정표에 ▲○○부락민관광(오전 7시30분) ▲군내 각급학교 기능직요원 1백50명 배구대회(10시) ▲○○농협 주부대학특강(오후 3시30분)등이 적혀 있었고 사무실여직원은 오후행사때 나누어줄 대형쟁반 3백여개를 포장하고 겉에 사무실주인의 이름표를 붙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8일에는 선거구내 모 국교자모회원 90명을 관광보냈고,9일은 요식업자 50명에게 충주댐 구경을 시켜준 것으로 일정이 기재된 이 예비후보의 사무실 바깥에는 「마음은 넉넉하게,씀씀이는 검소하게」라고 적힌 본인이름으로 된 과소비자제 현수막이 걸려 있어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다른 지역의 한 의원지망생은 『13대선거 낙선이후 지금까지 7백쌍이상의 주례를 서 주었다』며 평일인 10일에도 주례1쌍·상가 3곳을 담당해야 하고 일요일인 27일에는 무려 7쌍의 주례도 예약돼 있는 「바쁜몸」을 강조했다. 가위 당시선거운동체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 판국에 내년에는 네번의 선거가 줄줄이 몰려 있으니 「선거공화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겠다.
각 시·군·구 선관위에는 이달부터 위법사례신고센터가 설치됐다는데 이같은 과열·탈법사례가 지적받았다는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때마침 국회 대정부질문때 선거일정의 조정문제가 거론되긴 했지만 반드시 의원지망생들의 탓만도 아닌 전국 각지의 이상과열현상 앞에서는 어쩐지 공허한 목소리로 비쳐진다. 과거에도 「그렇고 그랬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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