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윤장호 병장이 누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특별 휴가를 나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어려서부터 반듯했던 아이"=28일 오전 윤 병장의 미니홈피엔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윤 병장이 졸업한 서울 강서구 내발산초등학교 6학년 11반 42명의 졸업사진이었다. 사진을 올린 동창생들은 "지금 이 시간 너의 죽음 앞에 모두가 슬퍼하고 오열한다… 부디 좋은 곳 가도록 기도할게"라는 글을 함께 남겼다.
6학년때 한 반에서 공부했던 유성룡(27)씨는 "가정형편 때문에 신문 배달을 했던 나를 돕겠다며 아침 일찍 동네를 함께 돌아 주던 그의 맘 씀씀이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6학년 담임을 맡았던 이희숙(46)씨는 "귀국한 뒤 찾아와 '군대 잘 다녀오겠습니다'며 웃고 가던 장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믿을 수 없다"고 울먹였다.
내발산초등학교에 보관된 생활기록부에도 윤 병장은 '모범적이고 우수한 어린이'로 기록돼 있었다. 성적도 대부분 '수'를 받을 정도로 우수했다. 생활기록부엔 '전 교과 성적이 우수하고 자발적임(1학년)''책임감이 강하고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함(6학년)' 등 칭찬으로 가득했다.
윤장호 병장의 미니홈피에 올린 초등학교 졸업사진. 윤 병장은 서울 강서구 내발산초등학교 6학년 11반에 다녔다.
그런 부모님을 위해 윤 병장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받은 월급 150여만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매달 집으로 부쳤다. 하지만 부모는 그 돈을 자식의 대학원 학비에 쓸 요량으로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었다. 어머니 이창희(59)씨는 "방학 때도 부모 곁에 못 오고 미국에서 생활비를 버느라 바빴던 아이"라며 "아프가니스탄 지원을 끝까지 만류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윤 병장은 입대 전인 2005년 1월부터 6개월간 투자회사의 인턴사원으로 일하면서 영어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도 했다. 돈을 모아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밟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로 영어 번역을 맡았던 윤씨는 매일 아침 직원들에게 솔선해 영어 표현이나 발음을 가르치곤 했다고 한다.
◆윤 병장 집 온종일 눈물바다=윤 병장의 누나 부부와 형이 28일 오후 외국에서 귀국하면서 온 가족이 눈물바다를 이뤘다. 호주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형 장혁(33)씨와 미국 LA에 사는 누나 서연(30)씨 부부는 인천공항에 비슷한 시간대에 도착해 오후 7시35분쯤 나란히 아버지 윤씨 집에 도착했다. 장혁씨는 "눈물밖에 안 난다"고 말했고, 서연씨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어머니 이씨를 부둥켜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 윤씨는 뒤늦게 미국 체니 부통령의 방문에 맞춰 테러가 난 사실을 알고는 "아들이 체니와 목숨을 바꿨다"며 통곡했다. 윤씨는 "장례 절차를 의논하러 온 군 관계자에게 미국의 보상이 없으면 장례를 치르지 않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윤 병장의 부모는 이날 아들의 사진.군화.옷 등 유품을 정리했다. 영정사진을 고르다 학사모를 쓴 졸업사진을 보곤 "이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윤 병장의 가족은 1일 오전 쿠웨이트로 떠난다. 현지에서 미군 수송기로 이송된 아들의 시신을 인계받아 2일 오전 서울공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권근영.천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