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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NL-PD논쟁 또 불붙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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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내 진보 진영에서 벌어지는 '진보 실패 논쟁'의 제2라운드가 전개될 것인가.

고려대 최장집(64.정치외교학) 교수가 계간지 '비평'(생각의나무.3월 초 발행) 봄호에 실은 '정치적 민주화: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란 글이 새로운 논쟁의 기폭제가 될지 주목된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개혁 실패의 이유로 우리 사회의 시급한 현안을 잘못 짚었다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본지 2월 27일자 6면>

◆NL-PD 논쟁 재연되나=최 교수는 민주화와 외환위기 이후 집권세력이 사회 경제적 문제(노동.복지 향상) 같은 정작 중요한 과제는 도외시한 채, 해결하기 힘든 '민족문제(남북관계.과거사 등)'에 매달려 왔다고 비판했다.

정권의 무능력도 문제지만, 그에 앞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기본적 진단부터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의 지적은 1980년대 운동권을 풍미한 민족해방파(NL)-민중민주파(PD) 논쟁을 연상시킨다. 노동과 복지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최 교수는 PD 쪽에 가깝다.

진보 학계의 또 다른 대표 학자인 서울대 백낙청(69) 명예교수는 지난해 4월 "국내 진보 진영에 민족문제를 도외시하는 이들이 있다"며 최 교수를 실명비판한 일이 있다. 백 교수의 입장은 민족문제를 중시하는 NL 쪽에 가깝다. 백 교수는 당시 "분단체제 전체에 돌려야 할 책임을 현 정권에만 묻는 것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백 교수는 또 최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것을 참여정부의 잘못으로 돌리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한 바 있다.

지금까지 최 교수는 백 교수의 비판에 공식 대응하지 않았다. 이번 '비평'지 기고에서도 백 교수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백 교수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반론으로 해석된다. 백 교수는 이에 대해 "아직 최 교수의 글을 보지 못했고 또 나를 직접 거명하지 않은 글에 대해 지금 뭐라 말하기 어렵다"며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른 식의 논평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는 독점될 수 없다"=중도 보수 성향의 서울대 송호근(51.사회학) 교수가 진보 논쟁에 개입해 새로운 시각을 선보였다. 그는 '진보'라는 개념과 가치 자체를 현재 우리 사회의 진보 진영이 독점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2월 27일 중앙일보에 게재한 칼럼 '진보는 독점될 수 없다'를 통해서다.

송 교수는 "민주 정치의 생명인 대변과 책임기능에 충실하지 못한 정권은 진보든 보수든 자격 미달이라는 시각을 보인 최장집 교수의 진단이 냉정하고 시사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이 시대에 진보는 과정적 가치와 결과적 업적으로 경합할 대상이지 누구의 독점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와 별도로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오후 YTN 생방송으로 중계된 '취임 4주년 합동회견'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진보 학자들을 다시 역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최근의 진보 논쟁에 자신이 개입한 것에 대해 "적절했다"고 자평하면서 "글 쓰신 분들이 진보를 표방할 균형적 토대 위에 서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또 아무리 읽어 봐도 어려워 이해를 못했다. 일반 국민과 무관한 진보논쟁은 구름 위의 논쟁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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