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면에서 계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오수석이 박대통령의 마음을 점령한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명쾌한 분석력이라고 한다.
오씨는 『내 입으로 내 이야기를 하려니 쑥스럽다』며 회피하다가 『까짓 것 자랑한번 해보자』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73년 어느 날 중앙정보부에서 북한 선전영화관람회의가 있었어요. 이후락 정보부장이 조총련에 배포된 것을 입수했다고 박대통령한테 보고하자 박대통령이 안보관련장관과 수석비서관들을 불러모아 같이 영화를 본 거죠.
전부 세 편짜리 이었는데 북한의 공업발전을 소개한 거였죠. 영화를 보는데 굉장히 잘 찍었더라고요. 경공업에서부터 제철 등 중공업까지 북한이 엄청나게 발전한 걸로 되어 있었어요. 영화만 보면 세계 1류 공업국가처럼 보이겠더라고요.

<북한영화보고 놀라>
깜깜한 정보부 영사실에 필름이 돌아가는데 시간이 갈수록 우리 쪽 분위기가 점점 가라앉더군요. 사실 이 무렵만 해도 우리가 북한보다 공업력이 뒤졌었는데 그런 영화를 보니 누구 할 것 없이 기죽는 느낌이 드는 거죠. 꽤 오랫동안 본 것 같아요.
영화가 모두 끝나고 영사실에 불이 켜졌는데 박대통령 앞 탁자 위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수북히 쌓여있었어요. 조금 피우다만 길쭉한 꽁초가 족히 세 갑은 되어 보이더라고요. 대통령 마음이 얼마나 침울하고 속이 상했으면 그렇게 줄담배를 피우셨겠습니까.』
오씨는 『지금도 그때의 대통령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거 별 것 아니다>
『박대통령은 나지막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로 장관 한사람한테 「○장관, 어떻소」라고 물었어요. 이 장관은 「대단합니다」라고 짧게 대답했죠. 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참석자들이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이러다가 이북에 곧 먹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던 거죠.
박대통령은 그 대답을 듣더니 긴 말씀 안 하시고 자리를 떴어요. 청와대로 돌아와 내가 결재 받으러 들어갔더니 박대통령은 이번엔 나에게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대번에 「그거 아무 것도 아닙니다」라고 했죠. 그리고 나선 내가 느끼고 분석한대로 모두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박대통령은 「사흘 후 안보회의가 있는데 오수석이 그 내용을 브리핑하도록 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갱지 20여 장에다가 북한공업의 문제점을 상세히 썼어요. 핵심을 말하자면 「북한공업이 지금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구조를 살펴보면 세계 흐름에 거꾸로 가고있다」는 거였죠.
실제로 그랬어요. 북한은 사회주의 자립자족경제를 주장해 철강을 만들더라도 신기술이 전혀 없었어요. 석유화학도 영세규모고요. 그런 것들이 영화 속에서 다 보이더라고요.
3일 후 안보회의에서 차트를 넘겨가며 열심히 브리핑했지요. 브리핑이 끝나자 박대통령은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더군요. 그러더니 이후락 부장에게 「이부장, 이젠 알겠지. 이북의 공업이란 거 별거 아니야」라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이북에 관한 자료가 생기면 오수석이 꼭 검토할 수 있도록 보여줘」라는 분부도 덧붙이고요.』

<터키인구 즉석답변>
경제관료출신의 증언자군은 『분석력과 지식도 만만치 않았지만 오수석을 더욱 돋보이게 한 것은 그의 브리핑 솜씨였다』고 말한다.
원래 군 시절부터 브리핑시스템을 좋아했던 박대통령은 부하들에게 『대한민국에서 오수석이 브리핑을 제일 잘 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상공부 관리출신의 K씨가 전해주는 「오원철 브리핑」에피소드 한 토막.
『오년쯤인가 박대통령이 연두순시차 상공부에 들렀어요. 오씨는 그때 공업1국장이었는데 국 업무를 브리핑했죠.
그때 박대통령한테 「터키에서 정변이 일어났다」는 긴급보고가 들어왔어요. 박대통령은「터키가 얼마나 큰 나라인데…. 쿠데타가 잘 안될걸」이라면서 「터키 인구가 얼마더라」라고 좌중에 한마디 던지시더라고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대답이 나오질 않고 있는데 오국장이 「예 각하, 터키인구는 ○○○○만명입니다」라고 대답해내는 거예요. 박대통령은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오국장은 모르는 게 없구만」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오국장한테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중학교 다닐 때 외웠던 숫자가 생각나더라」고 하더군요.
대통령 신임은 여러 군데서 발견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는 오수석의 재임기간일 것이다. 박대통령은 일단 「일 잘하고 믿을 만하다」싶으면 부하를 오랜 기간 자리에 늘러 앉혔다.

<알아서 잘해봐라>
김정렴 실장(9년2개월)·유혁인 정무수석(차석포함, 8년4개월) 등이 그랬고 오수석도 마찬가지다.
기간도 기간이지만 박대통령은 신임을 떼어줄 때 왕창 큰 몫을 맡겼다고 한다. 오씨가 기억하는 에피소드 하나.
『73년 여름휴가 때 일거예요. 박대통령은 진해에 내려갔다가 예년처럼 남해안지역 산업시찰에 나섰죠. 그 해는 창원단지가 시작될 무렵이라 박대통령은 나더러 「창원을 한번 구경하자」고 했어요.
박대통령을 모시고 창원엘 가는데 비가 퍼붓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그 지역이 염전·갯벌 투성이여서 길이 질펀해 졌어요. 대통령 차로도 움직이기가 힘들자 박대통령은 「공단자리가 어디야」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산등성이 몇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산에서부터 저산까지 몽땅 다 쓸 겁니다」라고 했죠. 박대통령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으세요. 공단이라고 해서 다른 지역 공단정도로 생각하셨던 모양이에요.
다른 사람 같으면 꼬치꼬치 캐물었을 텐데 박대통령은 역시 스케일이 달랐어요. 「그래 됐어. 알아서 잘 해보라구. 오늘은 비도 오고 하니까 그만 돌아가지」라고 하더라고요.』
정통파 테크너크랫(기술관료) 오수석은 대통령의 신임을 엔진동력으로 삼아 가속기 페달을 밟아갔다. 청와대·상공부의 유능한 경제관료와 재계의 야심만만한 기업가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중화학을 건설해나갔다.
창원(종합기계)·거제도(조선)·구미(전자)·광양(제2철강)·여천(제2종합화학)·온산(비철금속) 등 국토의 요소 요소에 공장굴뚝이 솟아올랐다.
중화학공업과 발걸음을 맞춰 국산무기생산도 키가 쑥쑥 자랐다. 소총·수류탄에서 시작한 걸음마는 70년대 말로 가면서 탱크·미사일·고속 정에다 항공기라는 장애물경주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부」오수석은 차츰차츰 비밀과 논란의 세계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