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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씨 울먹이며 최후진술 30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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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검찰은 1일 박지원(62)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징역 20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또 현대에서 받았다는 1백50억원에 대해서도 모두 추징 또는 몰수의 형태로 국가에 반환하게 할 것을 요청했다.

정치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징역 20년을 구형받은 이유는 朴씨의 혐의 중 현대 비자금 수수가 특가법상 뇌물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특가법상 뇌물죄의 경우 뇌물 액수가 5천만원을 넘으면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1백50억원이라는 뇌물 액수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개인이 수수한 금액 중 역대 최고다.

검찰은 "이번 사건은 구시대의 유산인 정경유착의 전형"이라고 규정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정경유착의 고리가 단절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도록 朴씨에게 엄벌을 내려야 한다"고 중형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뇌물 액수가 천문학적이고▶받은 돈도 대북사업이나 정치자금 등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30여억원을 유흥비 등 개인적으로 사용했으며▶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등 朴씨의 죄질이 좋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朴씨는 최후진술에서 "나는 결백하다. 한푼도 받은 적이 없다"면서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朴씨는 A4용지 9장 분량의 자필 최후진술서를 30여분간 읽어 내려갔다. 그는 "13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모시면서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 아내, 두 딸과 함께 한번도 휴가를 못 간 것이 미안하다"면서 울먹거리기도 했다.

그는 "고(故)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내성적인 성격을 알고 있는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 해외 도피 중인 김영완씨가 鄭회장이 돈 전달 사실을 나에게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본다"면서 '배달 사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1백50억원 부분에 대해서는 검찰의 추궁에 어안이 벙벙했다"면서 "특히 이익치씨의 거짓 증언을 듣고 감정이 북받쳐서 욕설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朴씨의 최후진술에 앞서 그의 변호인인 소동기 변호사는 "2000년 9월 朴씨가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 때문에 청와대를 떠난 후 부인이 미국으로 가자고 했지만 金전대통령 내외가 완곡히 만류하는 바람에 정권 마지막까지 함께하게 됐다"는 일화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소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金전대통령이 朴씨 부부를 영빈관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관저 앞까지 마중과 배웅을 나왔다는 것이다. 그날 金전대통령은 朴씨에게 "할 일이 있으니 당분간 은신하라. 다시 부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朴씨는 이듬해인 2001년 3월 정책기획수석으로 공직에 복귀했었다.

이와 관련, 朴씨는 최후진술에 앞서 "金전대통령과의 일화는 국가 이익을 위해 논의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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