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공부] 도심형 대안학교 '이우학교' 24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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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사회과목 '사회 참여 프로젝트' 수팽평가에 참가한 11학년(고2) 학생들이 정치적 난민을 신청한 미얀마 사람들과 함께 난민의 인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사진 제공=이우학교]

경기도 분당에 있는 도심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에는 요즘 입학과 전학 가능 여부를 묻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친다. 올해 고등부 졸업생 69명 중 상당수가 서울대를 비롯한 소위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 학교 정광필 교장은 "대안학교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특별한 입시 교육을 하는 학교로 오해하는 분이 많은 것 같다"며 "진학은 입시 위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 생긴 역설적 결과"라고 말했다. 정 교장의 이런 설명은 학생들의 학교 생활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사회 참여 프로젝트'에 참가한 10학년(고1)학생들이 이라크 파병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사회 참여 프로젝트는 각종 사회적 이슈 중 하나를 선택해 연구하며 해당 기관에 합법적 절차에 따라 민원을 제기하는 것을 배우는 수업이다.[사진 제공=이우학교]

◆공부는 모여서=10학년(고1)이 되는 오인영양은 방학 중 2주 동안 학교에서 '중3 복습'과 '고1 예습' 두 가지의 수학특강을 들었다. 겉보기에는 선생님이 준비한 프린트물에 나온 10~20여 개의 문제를 90분에 걸쳐 해결하는 문제풀이식 수업이지만 여느 학교의 수업시간에 비해 훨씬 소란스러운 것이 특징.

혼자 풀 수 없는 문제들은 '토론'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말하는 시간은 끝나기 전 20분 정도다. 오 양은 "교실이 떠나갈 정도로 시끄럽지만 잘 들어보면 문제풀이 외에 잡담을 하는 친구가 없다는 게 신기하다"며 "대부분의 문제는 선생님이 설명하시기 전에 해결된다"고 말했다.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학생들이 선생님과는 다른 해결방법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고 이 '새로운 해법'은 발표를 통해 공유한다.

과목마다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이 학교 대부분의 수업은 '혼자서 생각하기-친구들과 함께 생각하기-선생님과 함께 생각하기'의 과정을 반복하는 흐름에 따라 진행된다. 함께 생각하기 위한 수업의 단위가 4~5명이 한 조를 이루는 '모둠'이다.

또 모둠 활동을 수업의 중심에 놓다 보니 생긴 과목당 90분을 한 단위로 하는 수업시간을 '블록'이라고 부른다. 7~8학년(중1~중2) 수학담당인 김현아 교사는 "교사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학생 스스로 배우게 하는 것이 수업의 공통된 목표"라며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려면 학생 개개인에게 주의를 기울이려는 교사의 노력이 그만큼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리한 천왕봉에 오른 10학년(고1) 학생들. 고1 전학생이 '통합기행' 교과목인 지리산 종주에 참가해 산행을 통한 자아발견의 시간을 가졌다. [사진 제공=이우학교]

◆공부는 스스로=10~12학년(고등부) 학생들의 수업은 오후 4~5시면 모두 끝난다.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이 찾는 곳은 보충수업 교실도, 도서관도 학원도 아니다. 상당수 학생이 삼삼오오 선생님이 떠난 실험실이나 교실에 모인다. 동아리 활동을 위해서다. 이우학교에는 아이들 스스로 만든 학습 동아리가 50개 정도 운영되고 있다. 11학년이 되는 한상준군이 활동하는 동아리 '화동'은 이미 5개의 '새끼' 동아리를 배출할 정도로 학내에서도 명물이다.

2005년 7명의 학생이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실험과 화학이론을 공부하려고 모인 것이 '화동'의 시작이었다. 지도교사가 있지만 실험 주제 선정과 진행은 모두 학생들이 주도한다. 초기 구성원 7명이 서술형으로 치러지는 지난해 1학기 중간고사에서 모두 만점을 받아 이 동아리는 더 유명세를 치렀다. 한군은 "문과 지망생이지만 자발적으로 하다 보니 과학이 정말 재미있어졌다"며 "좋아서 하니까 성적도 따라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12학년이 되는 학생회장 장대환군은 지난해 독서토론 모임에서 활동했다. 선생님이 추천하거나 자발적으로 선정한 책을 매주 일정 분량씩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발제를 맡은 학생이 20분 정도 내용 요약과 토론거리를 발표하고 나면 지도교사가 10분 정도 발제 내용 중 미진한 부분을 보충하고 토론의 방향을 정돈한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의 토론이 이어진다. 3~4주면 한 권의 책이 소화된다.

장군의 모임에서 지난해 읽은 책들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하리하라의 생물학 까페'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등 10여 권에 이른다. 대학생들이 교양도서로 읽을 만한 책들이다. 장군은 "이미 모든 수업이 모여서 대화하는 '모둠 활동' 방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토론이 습관이 됐다"며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됐던 부분도 토론을 하다 보면 다 소화가 된다"고 덧붙였다.

◆학부모와 교사도 함께 배워=이 같은 교과과정과 학교 운영 방침은 교사.학부모.학생 간의 의견 교류를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된다. 지난해에는 교사가 세부적인 교과과정의 취지와 진행 방식을 부모들에게 설명하고 부모들이 개선점을 지적하는 교과포럼이 네 차례에 걸쳐 열렸다. 교사들도 교육방식과 교재 개발에 여념이 없다. 매년 동일한 교재만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찾기 어려울 정도다. 2004년 설립한 '이우교육연구소'는 다양한 교육 실험의 사례를 교사들끼리 공유하는 장으로 자리잡았다.

다른 대안학교와 일반학교 교사들도 직무연수로 이곳을 찾아 노하우를 나누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을 통한 농산물 직거래, 지역 환경단체와 벌이는 동막천 살리기 운동 등 학생.학부모.교사가 어우러져 벌이는 다양한 활동들도 이우학교 구성원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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