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극빈층 1600만 명 32년 만에 최대 규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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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극빈층이 32년 만에 최대 규모를 기록하는 등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정작 성장에 따른 과실은 일부 계층에만 돌아간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드러난 것이다.

◆극빈층 1975년 이후 최다=마이애미 헤럴드 등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 미디어그룹 매클래치가 2005년도 미국 인구 센서스를 분석해 25일 보도한 것에 따르면 미국 극빈자가 16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75년 이래 최대 규모다. 극빈층은 자녀 2명을 포함하는 4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이 연방정부가 규정한 빈곤 기준선의 절반인 9903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1인 가구의 경우엔 연소득 5080달러 이하를 버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극빈층 인구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26%나 증가했다.

매클래치는 극빈층 증가는 "2001년 이후 노동생산성은 크게 높아졌지만 임금과 일자리 증가는 거의 제자리에 머무른 것이 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늘어난 국민소득 중 대부분은 기업의 호주머니에 들어갔을 뿐 근로자들의 임금과 소득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물가 상승분을 반영한 미국 가계소득의 중간값(median)은 5년 연속으로 줄어들었다.

◆여섯 명 중 한 명은 정부 보조에 의지=AP통신은 25일 미국 인구센서스를 분석해 2003년을 기준으로 미국인 여섯 명 중 한 명은 정부 보조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도했다. 96년 390만 명이던 정부 보조금 수혜자가 2003년엔 440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저소득 가정을 위한 의료보장 제도인 '메디케이드' 수혜자도 2005년을 기준으로 4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같은 해 무료 식권을 배급받는 미국인도 한 달 평균 260만 명에 달했다. 이는 정부 보조 수혜자를 조사한 20여 년 만에 가장 많은 숫자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이 같은 결과는 빈곤층의 경제 자립을 도우려는 복지 정책의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통신은 분석했다. 일부에선 과거 무직자에게만 주어졌던 정부 보조가 저임금 임시직 근로자에게도 제공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 인구의 상당수가 제대로 된 임금이나 회사가 제공하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정부 보조금 신세를 져야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고 대다수 전문가는 꼬집었다.

미 하원 복지정책위원회 위원장인 짐 맥더모트 의원은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들을 교육해 고학력 숙련 노동자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하지만 그러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빈곤층 노동자 한 명에게 고등교육 혜택을 주는 데는 연간 25만~50만 달러가 소요된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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