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도 통일도 기존입장 고수/연형묵 북한총리 유엔연설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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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잇단 국제압력에 맞선 불가피한 방어몸짓”추측/급속한 변화기대 아직은 성급
남한과의 동시 유엔가입,부시 미대통령의 주한미군보유 지상발사 전술핵무기 철수 결정 등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주목되는 가운데 관심을 끌었던 연형묵 북한총리의 4일 유엔연설은 북한의 기존입장을 되풀이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연총리는 핵사찰문제와 관련,『남한내 미군핵이 완전 철수되면 핵안전협정체결문제는 해결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부시 선언이후 나온 북한외교부성명이나 김용순 노동당국제담당비서가 밝힌 내용을 어법까지 똑같이 되풀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미국이 남한내 핵무기를 철수하겠다고 했으니 빨리 철수하라. 그러면 핵사찰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것으로 종전의 입장과 조금도 달라진게 없다.
이는 북한이 핵안전협정체결을 국내 일부 관측통의 예상같이 쉽사리 응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서 앞으로의 귀추가 주목된다.
연총리는 유엔가입과 관련,앞으로도 단일의석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만 밝히고 남북의 화해,공동보조에 대해선 이렇다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우리나라와 유엔사이에 있었던 과거유산이 올바르게 청산되기를 바란다』고 밝혀 한국전과 관련,유엔사령부문제,휴전협정문제 등에 대해 유엔측과 협의를 벌일 것임을 시사했다.
연총리의 유엔가입에 대한 이같은 해석은 지난 7월 한시해 전유엔주재 북한대사가 『남북이 유엔에 가입하더라도 대화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피력한 것과 연관지어볼때 향후 유엔에서 남북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점을 예고해 주고 있다.
대남분야에 대해 천명한 연총리의 연설내용도 이같은 관측을 짙게 해주고 있다.
그는 통일방안·남북정상회담문제를 포함,대남관계에서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통일방안과 관련,남에 의한 「먹고 먹히는 식」의 흡수통일을 다시 우려하면서 연방제통일이 가장 현실적이고 평화애호적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이 그동안 연방제에 대해 외교·국방권을 지역정부에 이양할 수 있다는 시사를 해온데 비한다면 오히려 후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총리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고위급회담에서 좋은 결실을 맺게되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혀 기존입장에서 전혀 진전된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연총리의 이같은 표현은 88년 10월 유엔총회에서 강석주 외교부 부부장이 행한 연설에 그대로 들어 있다.
게다가 같은해 9월8일 김일성 주석이 북한정권수립 40주년 경축보고대회에서 언급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그당시 김주석은 정상회담이 실현되려면 조건이 성숙돼야 한다며 그 조건으로 ▲남북불가침선언의 채택 ▲연방정부수립 등을 제시했다.
연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그동안 잠잠해졌던 콘크리트장벽을 다시 거론,유엔이 이 문제의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는 그동안의 대남공세를 되풀이한 것이어서 유엔에서의 남북대결을 우려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런 점만 보면 북한이 유엔가입후 종전과는 달리 세계조류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리라는 예측은 빗나가게 됐다.
결국 북한은 경제적으로는 개방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정치·군사적으로는 기존입장을 고수하겠다는 전략을 앞으로도 계속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때 오는 10월22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제4차남북고위급회담의 전망도 일단 어둡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다른면에서 본다면 연의 연설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유엔동시가입이나 전술핵 감축등 정세변화는 북쪽에 대해 개방과 핵사찰수용이라는 압력요인으로 작용했고 이에 따라 북측으로서는 당분간 강경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내외의 분석이었다.
동구공산권의 몰락,소련의 변화등 가뜩이나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북한이 새로운 상황변화에 즉각 반응할 것이라는 것은 성급한 기대라는 것이다.
북한측은 체제의 결속이나 주민들의 동요를 줄이기 위해서도 어느 시점까지는 종래의 입장을 지속할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이 연총리 연설의 기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연총리의 연설에서 나타난 기존의 강경한 외양보다는 연총리가 일본을 거쳐 미국나들이를 하고 김일성이 북경을 방문하는 그 내부움직임의 변화에 더 주목해야할 것이다.<안희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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