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병맞아 고통받는 경찰 없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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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 3년간의 쓰라린 고통을 말로 다할수 없어 수기를 쓰게됐습니다. 다시는 남편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경찰청 개청기념 경찰가족 수기현상모집에서 『결혼기념일』로 최우수상을 수상한 원주경찰서 판부지서 정재문경장(37)의 부인 권오숙씨(33)는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4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살림 속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던 권씨가족에게 어처구니 없는 불행이 닥친 것은 88년 11월24일 권씨부부의 결혼 9주년 기념일.
남편 정경강(당시 순경)으로부터 『오늘 결혼기념일이니 점심은 외식으로 하자』는 전화를 받고 행복감에 젖어있던 권씨에게 날버락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남편이 대학생 시위대가 던진 화염병에 맞아 화상을 입고 병원응급실에 있으니 빨리 가보라는 거예요. 허겁지겁 병원에 가보니 양팔·다리에 3도화상을 입고 누워있더군요. 그순간 앞이 캄캄했습니다.』
권씨는 그후 60여일을 병원과 집을 오가며 남편의 손발이 돼야했다.
그러나 정순경은 권씨의 정성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화상 후유증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새로운 고통이 시작됐다.
『매일 수면제를 10알씩 복용해도 도통 잠을 못자더군요. 정신과병원에 입원시키고, 침도 맞아보고, 효험이 있다는 한약도 써봤지만 남편의 불면증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오랜 병치레로 집안살림은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권씨는 치료비를 대기위해 원주시내 음식점에서 파출부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날 남편은 『잠못자는 고통보다 죽는게 낫다』는 유서를 써놓고 집을 나가버렸다. 온마을을 뒤지던 권씨는 남편이 집근처 컴컴한 교회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을 발견하고 『용기를 내 더 참고 노력해보자』며 호소했다.
이날부터 권씨부부는 평소 다니던 개운동 남산장로교회·기도원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3시간의 단잠」을 맛보게 됐다. 화상을 입은지 3년, 기도를 다닌지만 7개월만에 이룬 기적이었다.
불면증이 호전돼 예전의 건강을 되찾은 정순경은 지난 봄 경장으로 승진, 근무에 충실하고 있다.
권씨는 「남편이 건강을 되찾게돼 가정에 행복의 빛이 다시 비치는 것같다』며 『삵의 희망을 되찾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원주=홍창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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