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동시가입과 통일환경/창간기념 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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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변화하는 국제정세/외교좌표 가다듬자”/남북한관계 실질개선에 큰 도움/주변국들은 한반도의 급격한 변화 바라지 않아/교차수교후 북한 핵사찰 가능성/북이 체제유지에 자신감 가질때 교류 응해올듯
□좌담
최광수씨<전 외무장관·현대경제사회연 회장>
한승주씨<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
▲한승주교수=국제정세에서 지역관계와 남북관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먼저 소련이 내부적으로 근본적 변화를 겪어 소련이란 존재가 러시아라는 존재로 대체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일본은 점점 더 정치적인 위상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서 남북한이 유엔에 함께 가입하는 것은 국제정세 변화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남북의 유엔가입이 또 국제정세에 변화를 주리라 생각합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우리 북방정책의 다음 단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 있고,또 우리와 우방,즉 미국·일본·유럽과의 관계재정립과 남북관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최광수 전장관=한교수 말씀대로 국제정치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관계가 변하고 있고,이미 국제정치가 가야할 큰 방향은 제시됐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직은 새로운 질서라는 것이 어떤 모습이 될지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우리의 북방정책 추진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와의 관계,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한 변화가 있었고,그것은 눈에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유엔에 동시가입한다는 것은 그 실체도 중요하지만 시기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기에 가입한다는 커다란 테두리안에서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급격히 변화하는 국제정치·주변정세 속에서 다시 한번 우리 외교의 좌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한교수=현실적으로 2선에 머물러 있던 우리도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남아공문제나 중동문제등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분쟁이나 결정해야 하는 일에 참여의 폭이 커져야 합니다. 따라서 양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우리 외교의 면모가 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 전장관=유엔에서의 우리 외교가 유엔과 우리와의 관계에서만 보아온게 사실이고,그렇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유엔 활동은 유엔헌장에 규정된 유엔본래의 목적·기능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유엔에서의 우리입장을 지지해 달라거나 설득하는데 외교역량을 집중해왔습니다. 남북관계도 세계 도처에서 낭비적이고 비생산적인 대결과 경쟁을 해온게 사실입니다.
이제 보다 폭넓은 의미에서 유엔의 본래 기능인 국제 평화안정이라든지 인류복지,좁게는 개발도상국 경제,군비경쟁지양과 군비축소,환경문제,인권문제 등에 대한 활동을 시작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관계도 당장은 대립이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환경,군비경쟁 완화,경제개발 등에 남북이 이해를 같이하고 협력할 분야가 많이 생길 것입니다. 그 안에서 대화의 기회가 생기고 남북관계에도 화해와 신뢰구축의 주요한 매개체가 추가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교수=유엔에 가입은 했지만 동시가입에서 오는 결과,특히 주변국과의 관계를 충분히 고려했는지,또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와 정부의 준비에 의문도 있습니다. 실례로 일본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한데 대해 정부는 꽤 당황하고,부정적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일본이 예상보다는 빨리 의사를 표시했으나 동시가입을 추진할 때 이것은 예상했어야 하고 기대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이미 동시가입을 추진했고 수락하는 마당에 교차승인이나 수교가 다소 마땅하지 않고 불만스러워도 가능하면 순조롭게 처리하는 방법을 찾는게 좋지 않나하고 생각합니다.
▲최 전 장관=나도 동감입니다. 다만 정부도 남북한 동시가입후 주요 우방국과의 관계를 북방정책 추진뒤부터 검토해 왔다고 압니다. 일본과 북한은 이미 수교교섭을 하고 있고,그 자체가 국가인정입니다. 우리도 7·7선언에서 한반도의 세력균형과 평화와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행동하게 만드는데 필요하다면 우리도 우방국을 도울 수 있다고 해 왔습니다. 문제는 한반도 장래에 중요한 위치를 갖는 나라,즉 미국·일본과 일부 유럽국가의 대북태도는 북한이 얼마나 국제사회에서 책임있는 행동을 하려하느냐를 보아가며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핵사찰이라든지 남북관계를 의미있고 실질적인 자세로 임하느냐가 하나의 척도가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앞서가려는 것은 변화하는 국제질서에서 자기의 입지·발언력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경계할 것은 일본이 하고 있는 그 자체보다 넓은 시야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을 원하고 항구적인 선린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자세가 있는지를 확인하면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교수=주변국들이 각자 자기이익에 입각해 행동하는데 대해서 우리가 효과적으로 대처하는게 필요합니다. 너무 신경질적으로 반응을 보여서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7면으로 계속>

<6면에서 계속>
우리는 주변국들이,특히 일본과 관련해 「당신은 통일을 원하는 거요」라는 약간 흑백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주변국들이 국제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하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이 나라들이 반드시 분단을 원한다거나 분단 지속이 자기들에게 유리하니까 그쪽으로 일을 추진한다거나 하는 양극적 사고보다 냉정한 판단속에 우리 자신의 국가이익이 추구돼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최 전장관=어려운 것은 모든게 불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소련의 변화가 우리에게 불리한 방향은 아니지만 그 변화의 형태가 어떻게 나타날지,연방과 공화국의 관계,구체적으로는 분산배치돼 있는 약 2만7천개의 핵무기가 어떻게 될지 불명확합니다. 또 소련경제가 어떻게 될지도 연방과 공화국 관계에서 결말이 나겠지만 명확히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중국도 물론 소련의 영향을 안 받을 순 없죠. 현체제에 큰 변화없이 점차 개방경제로 나가려할 것입니다.
그러나 집권자가 생각하는 속도대로 갈지는 의문입니다. 북한은 더 심각하리라고 봅니다. 다만 한가지 우리가 아시아 주변정세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혁명1세대」,즉 등소평,양상곤,진운,그리고 김일성 등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가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이들은 자연적인 수명도 70대말∼80대여서 멀지 않은 장래에 중국이나 북한에도 상당한 변화가 올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일본이 패전국이라는 점에서 자기들의 방대해진 경제력에 비해 군사·정치적인 면에서 억제해온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많이 달라질겁니다.
이런 변화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반도 주변정세의 안정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한교수=주변국과의 관계는 북한­일본 수교가 이루어지고 난 뒤 한중수교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 뒤 시간을 두고 북한­미국간의 수교 또는 다른 공식적 관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북한은 핵사찰에서 최소한의 양보를 하고 일본과 수교하려 할 것이고 그것은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 만족스런 것이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효과적인 핵사찰은 이런 교차 수교 과정이 진전된 다음에 기대하는 것이 아마 현실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강력한 압력은 가해야겠지요.
▲최 전장관=지정학적으로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 있는 것이 불리하면서도 유리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일본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크게 감소됐다고는 해도 전통적으로 북방도서 등 일소간에는 첨예한 대립이 있습니다. 중소관계도 상당히 오랜 조정기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국은 소련의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중관계도 그렇죠. 또 미국은 보다 큰 관점에서 국제질서를 잡아야 합니다.
남북대화가 되고 보다 실질적인 교류협력만 가능해지면 한반도 주변지역을 묶어 지역안정이나 발전을 도모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는 입장입니다. 어느 한 큰 나라가 움직이는 것 보다 우리가 역할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지정학적으로 불리하면서도 우리를 속박해온 북방,유엔가입 등이 모두 해결돼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습니다.
▲한교수=주변국들은 구태여 우리의 분단을 원한다기보다 자기들에게 불리한 통일,급격한 변화를 우려하는 것입니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북한이 어떻게든지 개방해 다른 나라,특히 우리와 교류·협력하는 것이 우선 분단의 고통·손실을 극복하고 해소하는데 필요하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통일의 첩경이라고 믿습니다.
▲최 전장관=그렇습니다. 지금 주변국들이 현상고착을 원하느냐,통일을 원하느냐는 관점을 떠나 모든 나라가 자기 주변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남북관계도 지역의 안정을 깰 수 있는 급격한 변화에는 저항하겠지만 대화와 교류를 통해 통일에 한발한발 가까이 간다는 것은 우리 일이지 원하지 않는다고 못갈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교수=그동안 북방정책도 추진했고 그것이 유엔가입이라는 열매로도 나타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제협력이라든지 수교·유엔가입을 목표로 추진해오던 것이 한 단계는 완성됐다고 봅니다. 이제 소련·중국도 북한까지 변하는 과정에서 북방정책의 강도가 그대로 유지돼야 하느냐하는 그 내용의 수정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북한은 이미 경제노선·대외관계에서 이미 방향을 전환했다고 보는데 앞으로 보다 변화된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북한은 유엔에 들어감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자기의 체제존재를 기정사실화했습니다. 또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확대해 자기체제 존속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게됐다고 봅니다. 북한이 제일 염려하는 것은 한국시장경제에 동화돼 흡수통일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체제유지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면 그때 교류에 응해올 것으로 보입니다.
▲최 전장관=종래에 북한은 대화에 성의있게 임하지 않았으나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북한은 물론 경직되고 폐쇄된 사회입니다만 북한지도층의 현실적응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자기들도 살 궁리를 할 겁니다. 이념보다 자기들체제가 살아야겠다는 것이니 운신의 폭은 좁으나 그안에서 발버둥하는 건 사실입니다. 이제까지 소련과 중국에 기대왔는데 그것이 저렇게 변했으니 변화는 필연적으로 옵니다. 우리가 좀더 노력하면 북한도 이제 문을 열지 않을 수 없겠죠. 하루 아침에 변하는 건 아니니 환상적인 낙관론을 가져서는 안 되겠죠. 그러나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식해야 합니다.<정리=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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