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태어나고 싶지않은 사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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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부남여인 사건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들은 또 다시 성폭행이 원인이 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소식을 접했다. 10년전인 대학시절 불량배에게 당한 성폭행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투신자살로써 삶을 마감한 젊은 여인의 비극에서 새삼 우리 사회의 타락한 가치관과 비뚤어진 성문화를 되돌아 보게 된다.
하루도 빠짐없이 성폭행이란 추악한 범죄가 저질러지고 있는 오늘의 새태에 비추어 볼때,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성폭행으로 인한 충격과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이 적지 않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결코 남의 일일 수만은 없다. 성범죄는 어느 시대,어느 사회에서도 있어 온 것이나 그 발생률은 그 사회의 도덕적 수준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이상,오늘날과 같은 성범죄의 만연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기는 어렵다. 뿐만아니라 그 피해는 오늘 당장이라도 우리들의 주위에,혹은 직접 우리들의 가정에 찾아들 수 있다는 점에서도 오늘날의 성범죄는 모두가 다같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다.
성범죄를 만연시키고 있는 근본적인 요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간마저도 쾌락의 도구로 삼는 사회의 향락풍조와 물신주의다. 성적 욕망이 본능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일정한 수준에서 조절하고 건전한 사랑으로 승화시킬줄 알아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사회는 그 동물적 욕망의 억제와 승화는 커녕 오히려 끊임없이 그것을 자극하고 충동질하는 문화에 젖을대로 젖어 있다. 우리들이 매일 접하는 상품광고만 보더라도 거개가 성적 자극과 호기심을 매개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문화와 경제구조속에 젖어 살면서 과연 그 누가 성적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성폭행때문에 투신자살한 여인의 사연이 보도된 다음 날에도 19명의 중·고교생들이 집단추행혐의로 구속된 사실이 보도되었다. 성을 놀이로 인식하는 타락한 가치관,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경제적 이익추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회구조가 존재하는한 성범죄의 확산은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투신자살한 여인의 비극에서 또 한가지 우리들이 생각해 보아야할 점은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택해야 했겠는가 하는 점이다. 무엇이 성폭행으로 인한 충격과 고통을 그토록 심하게 한 것일까. 그것은 이유불문하고 무조건 여성에게는 육체적 순결을 강요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그릇된 남성우월주의와 이기주의에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살한 김모씨의 가족은 「여자에게 성폭행은 살인보다 더 잔인한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씨의 시신엔 「여자였기 때문에 겪었던 성폭력에서 벗어나 다시 태어날 때는 남자로 태어나라」는 바람에서 남자수의가 입혀졌다고 한다. 우리들은 여기에서도 우리 사회의 아무런 근거없는 남성우월주의와 이기주의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성폭행의 피해는 교통사고로 인한 피해와 본질적으로 과연 무엇이,또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런데도 우리사회의 그릇된 인식과 남성들의 터무니없는 이기적 요구는 피해여성들을 일반 사고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절망감에 빠뜨리는 것이다.
성범죄를 만연시키고 있는 우리 사회의 풍토와 구조의 개선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 개인으로서도 그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도 실은 막막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에게 불필요한 정신적 압력과 때로는 목숨과도 바꿀 고통을 주고 있는 남성들의 부당한 요구와 독선에 대한 반성만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우선 그것부터라도 해야 한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 그 자체는 교통사고를 당한 것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하나의 단순사고일 뿐이다. 그것은 순결문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어느 선진사회도 성폭행으로 인한 피해를 단순한 사고이상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들 머리속 어느 구석에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를 여성의 육체적 순결에 대한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의식을 씻어내는 일부터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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