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김은 PGA의 맹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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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PGA 투어에 걸물이 떴다. 한국계 재미교포인 앤서니 김(한국이름 김하진)이다. 21세로 현역 미국 PGA 투어 선수 중 최연소인 그는 올해 PGA 투어에 입성하며 "타이거를 잡으러 왔다"고 큰소리를 친 것으로 유명하다. 허풍만은 아닌 듯하다. 그는 19일(한국시간) 끝난 닛산 오픈에서 9위에 올랐다. 대단한 성적은 아니지만 깃대가 가장 어려운 곳에 꼽히는 최종라운드에서 데일리베스트인 7언더파 64타를 친 것을 보면 골프 천재가 맞다.

그는 '300야드 클럽'에도 가입했다.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302.4야드로 PGA 투어 랭킹 7위다. 드라이브샷 평균 300야드는 중요한 기준이다. 이 클럽에 가입할 능력이 안 되는 선수는 최고가 될 수 없다. 타이거에 대항할 맹수의 유전자를 가진 것은 명확하다.

말과 행동도 튄다. 닛산 오픈 3라운드에서 그는 한쪽엔 검정, 다른 한쪽엔 흰색 신발을 신고 나왔다. "내 골프가 신통치 않으니 신발이라도 튀어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물론 농담이다. 그는 패기에 넘치고 사납다.

그는 "지난해 나를 초청하지 않은 대회는 내 따귀를 때린 것이다. 대회에 나가지 못하는 바람에 Q스쿨 면제를 받지 못해 고생했다. 지난해 나를 무시한 대회가 올해 날 초청한다 해도 지난 일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씹는 담배를 질겅대며 침을 퉤퉤 뱉으면서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 얘기다.

공석에서 남에 대해 나쁜 얘기를 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엄청난 파격이다. 독설가로 유명했던 미국프로농구(NBA)의 찰스 바클리가 연상된다.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도발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당신은 제2의 존 댈리인가.

"아니다. 그런 삶을 살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절대 KJ(최경주)나 레티프 구센 같은 선수는 되지 않겠다."

-무슨 말인가.

"개성 없는 선수가 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한국계 대선배인 최경주가 기분 나쁘지 않겠나.

"상관없다. 나는 KJ와 다른 사람이다."

최경주는 그를 두고 "인사도 하지 않는 선수"라고 말했다. LA에서 함께 성장한 나상욱도 앤서니 김과는 서먹하게 지낸다.

지난 몇 년간 미셸 위가 그랬던 것처럼 앤서니 김은 골프계를 떠들썩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외국 기자들은 앤서니 김이 입을 열면 "이번엔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고 궁금해한다.

보수적인 골프계에서 앤서니 김이 손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필드에선 그의 배짱이 먹힐 수도 있고, 그의 개성이 잘 팔릴 수도 있다. 그의 평균 타수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할 것이다.

성호준 기자, LA= 원용석 LA지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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