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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로 정권 교체 안 된다는 얘기는 이제 안 통하는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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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저는 학자로서 정당.선거 민주주의에 대해 원론적인 얘기를 했을 뿐입니다. 대통령께서 왜 그러셨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직접 대응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20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소장실에서 만난 최장집(64.고려대 정치외교학.사진) 교수의 표정은 담담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17일 발표한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이 최 교수를 겨냥한 비판임을 그 역시 의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은 다양할 수 있다"며 "제가 제기한 원론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이제 학술 차원을 떠나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않고 하는 현실 정치의 문제로 변했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관계기사 4면>

최 교수는 1980년대 이래 한국 학계의 진보적 흐름을 주도해온 학자다. 노무현 정부의 사회 경제적 개혁의 미진함을 앞장서 비판해 왔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자 주).

-대통령까지 나서서 특정 교수의 견해에 관심을 표명한다는 것은 이례적인데, 학자로서 영광 아닌가요.

"글쎄요, 그런 생각은 안 해봤습니다."

-대통령의 국내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이 대표적으로 최 교수를 겨냥했다고 합니다(※청와대 관계자는 19일 "최근 노 대통령을 비판한 최 교수를 가리킨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렇다 해도 제가 직접 대응은 안 할 것입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학자들이 계속 견해를 밝히는 식으로 이어갈 수는 있겠지요."

-제자들이 대신 대응한다는 뜻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다른 분들이 많다는 얘기입니다."

-차기 대선에서 여권이 특단의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던 최 교수의 발언이 이른바 '진보 논쟁'의 도화선이 됐는데,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한 것입니까.

"선거를 통해 유권자의 다수 지지를 얻은 정당으로 정부 교체가 이뤄지는 것은 민주주의의 당연한 현상 아닙니까. 한 정당이 계속 집권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원론적 수준에서 얘기한 것입니다. 정부 교체가 한나라당이어서 안 된다는 이야기는 이제 통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범여권과 한나라당의 대립을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보는 이들은 그런 주장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참여정부의 실패'가 '정권 교체의 당연한 수용'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문제의식이 왜소화돼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20년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 민주화가 됐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슨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있습니까. 이제 정책과 내용으로 정당을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용 면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최 교수의 발언은 연말 대선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 있다는 뜻으로 확대 해석되기도 하는데요, 정말 한나라당을 지지할 생각이 있습니까.

"그건 다른 차원의 얘기예요. 정당 민주주의의 원론을 얘기한 것과 구체적으로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한다고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특정 정당을 지지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유권자 개개인이 판단할 몫입니다. 나는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가 민주주의의 요체임을 말한 것입니다."

-대통령께서 화가 나신 것 같습니까.

"글쎄요,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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