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에 독일계 자치공화국 추진/2백여만명 「볼가공화국」재건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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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 연방해체 와중에서 소련내 독일계 소수민족이 자치공화국을 재건할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번 보수파 쿠데타 실패후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독·소 유대재확인 및 서방의 대소 지원 호소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인권회의 참석 ▲에리히 호네커 전 동독 국가평의회의장 인도협상 ▲발트해 3국 순방 등 독일언론들의 지적처럼 「다목적 외교」를 벌이고 있는 한스 디트리히 겐셔 독일 외무장관은 10일 소련 지도자 및 독일계 주민 대표들과 이 문제를 협의,긍정적 반응을 얻어냈다.
특히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1941년 해체된 소련내 독일계 소수민족 공화국이었던 볼가공화국 재건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볼가공화국은 1924년 소련거주 독일인들이 불가강 유역에 세웠던 자치공화국으로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후 요시프 스탈린이 이를 해체해 버렸다.
볼가공화국 해체후 독일계 주민들은 타지역으로 강제이주됐는데 중앙아시아 카자흐공화국으로 가장 많이 이주돼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현재 소련에 거주하는 독일계 주민은 약 2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이들은 알마아타를 중심으로한 카자흐공화국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다.
이들도 페레스트로이카 도입이후 소련내 각 공화국의 독립운동이 본격화되는등 민족주의가 고양되고 있는 틈을 타 볼가공화국 재건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중에서 하인리히그로트가 이끄는 「소련내 독일인의 재생을 위한 제동맹연합」과 후고 보름스베커가 최근 결성한 「소련거주 독일인 연맹」이 가장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자치독립국 건설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역시 영토확보 문제.
독일계 주민들은 옛 영토인 볼가강유역으로 이주,자치공화국을 세우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현지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이와 관련,아나톨리 소브차크 성 페테르스부르크(구레닌그라드) 시장은 9일자 독일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독일계 주민을 위해 성페테스부르크 근교에 15만㏊(약 4억5천만평)의 땅을 배정,20만가구가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놓았다고 밝혔고,겐셔 장관과의 회담에서 이를 정식제안했다. 이에 대해 독일계 주민 대표들은 『또다른 강제이주에 불과한 미봉책』이라고 이를 거부했다.
영토를 둘러싸고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는 있으나 볼가공화국 재건은 낙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독일과 소련의 이해가 서로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즉 소련으로서는 지금까지 독일의 경제지원에 대한 보답,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볼가공화국을 이용하려 하고 있고,독일은 소련거주 독일인 보호라는 대의명분외에 이들의 독일유입을 방지하려는 현실적 요구가 있다.
소련내 독일계 주민들의 자치공화국 건립운동을 보면서 비슷한 입장에 있는 우리로서도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베를린=유재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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