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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9) 서울 은평을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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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58) 한나라당 의원은 양복 차림을 싫어한다. 틀에 갇혀 개성이 말살되는 것 같다는 게 이유. 그런 그가 양복을 벗어부쳤다.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 비리의혹 특검법을 거부한 데 항의해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자 이에 동조, 캐주얼로 갈아입은 것이다. 당 사무총장과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요즘 우유로 끼니를 때우면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한나라당이 과거의 잘못된 관행인 불법 대선자금 비리를 비껴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에 따른 처벌도 마땅히 받아야죠. 그래야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와 무관하게 대통령 측근 비리의혹은 특검이 한 점 의혹 없이 밝히도록 하자는 겁니다. 측근 비리의혹은 특검에, 대선자금 수사는 검찰에 맡기자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정치권은 민생과 정치 개혁에 매진하자는 겁니다. ”

그는 노무현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해 잔뜩 날을 세웠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문제, 새만금 문제, 노조의 파업사태, 부안 사태, 재신임 문제, 불법 대선자금 문제,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의혹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해결되는 건 없고, 오히려 대통령이 나서 국정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실패, 그 자체”라고 규정한 그는 무엇보다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3분의 2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된 법안입니다. 측근 비리의혹 특검법을 검찰권 보호라는 구실로 거부하는 건 의회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처사에 다름 아닙니다. 대통령은 하루빨리 특검 거부를 철회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지금처럼 국정혼란의 중심에 서 있으면 안 돼요.”

그는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권력을 이용한 부패”이며 “한나라당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시절과 이후 고교 교사생활을 하는 동안 유신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이 일로 5차례에 걸쳐 10여년의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러느라 대학을 1994년 32년만에 졸업했다. 그동안 서울민중연합민족학교 의장과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조국통일위원장을 거쳐 민중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그 후 1996년 15대 총선때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해 금 배지를 달았다. 경북 영양 출신의 ‘일월산 촌놈’이 여의도에 입성한 것이다. 그는 그러나 금 배지를 달지 않았다.

▶ "'함박웃음'이란 글자는 저처럼 감옥에서 20년을 지내셨던 한 선배가 써주신 작품입니다. 감옥가기 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이 선배와 '정말 좋은 세상이 무엇인가'하는 얘기를 나누다보니 정말 좋은 세상은 자기 생활에 만족이 있는 생활이 아니겠는가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언제나 웃음이 날 겁니다. 그냥 입으로만 웃는 게 아니고 온 몸이 웃게 될 겁니다. 그것이 바로 함박웃음입니다. "

정치인 이재오는 '함박웃음'이 자신의 브랜드 네임이 된 경위를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지난 10월초 자신의 지역구인 은평을 지구당을 순수봉사단체인 '함박웃음봉사단'으로 정식 개편했다. 현재의 지구당은 흔히 '돈먹는 하마'로써, 고비용 저효율정치의 표본으로 인식돼 왔다. 생산적인 생활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이 총장은 지구당 개편을 통해 지역의 각 동과 소모임 등을 16개 봉사단으로 개편하고, 1당원 1봉사단에 가입하게 했다. 지역을 위해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앞장서는 봉사조직이야말로 지역의 근간이요, 생활정치의 표본이다. 그로써 이 총장은 자신의 생활철학이자 정치철학인 '함박웃음 넘치는 나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치가 국민들의 삶 속에 친숙하게 자리 잡고 국민들과 진정으로 함께 호흡할 때 비로소 한국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정치철학이자 소신이다.

“당선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새벽 4시에 당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동원령이었습니다. 처음엔 계엄이거나 무슨 비상사태가 터진 줄 알았어요. 그 날 노동관계법과 금융관계법이 날치기로 통과됐습니다.”

의사봉을 두드리기까지 4초 걸렸다. 그는 거수기 노릇을 한 것에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의사당을 빠져나오면서 가슴에 단 배지를 떼었다. 국회의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때까지 배지를 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로 그는 배지를 달지 않는다.

초선 의원 시절 원내총무에 출마한 그는 네번째 도전 끝에 원내총무에 당선됐다. 지난 여름 그는 재선 의원으로서 대표 경선에 나섰다. ‘희망 장미’ 를 들고 전국을 누빈 그는 선거엔 졌지만 깨끗하고 참신한 선거운동을 벌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돈 안 쓰는 지역구 관리로 정평이 나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맡고 있는 서울 은평을 지구당을 순수 자원봉사 단체인 ‘함박웃음 봉사단’으로 개편했다. ‘함박웃음’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입으로만 웃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웃는 웃음이다. 그는 또 12년째 자전거로 지역구를 순례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자인 것은 맞지만, 지역구 의원은 숲과 더불어 나무를 봐야 합니다. 지역구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거죠. 자기 자신을 철저히 지역에 묻어야 합니다. 그래야 중앙 정치무대에서 당당할 수 있습니다. ”

그는 정치가 국민들의 삶 속에 자리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가 진정으로 국민들과 함께 호흡할 때 국민들이 함박웃음을 짓게 될 거라고 믿는다.

“한나라당도 부패 등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고쳐 사랑받는 야당이 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낡은 당 이미지로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사무총장으로 있는 동안 국민들이 ‘아, 정말 한나라당이 바뀌고 있구나, 우리 정치가 달라지겠구나’ 하는 얘기가 나오도록 하겠습니다. 깨끗하고 양심적인 보수정당으로 당 체질을 바꾸겠습니다.”

김경혜 월간중앙 정치개혁포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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