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옷가게 구입 담당 박인숙씨 "거리의 패션 제가 창조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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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빌리지 유통 상품부의 박인숙대리(27)는 거리의 패션을 주도한다는 자부심으로 하루하루를 옷속에 파묻혀 산다.
속칭 「사입자」로 널리 알려진 의류 구입담당자가 그의 직업. 「사입자」들은 이대앞·명동 일대등의 옷가게에 보통 1∼2명씩 고용되어 새벽 옷 도매시장에서 잘 팔릴만한 옷들을 골라 그날그날의 매장을 구성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입자」경력4년째인 박씨의 경우 7명의 후배 「사입자」들을 감독·관리하는 팀장을 맡고 있어 매일 새벽 시장으로 출근하진 않지만 가끔씩 남대문시장 등에 들러 현장의 분위기, 유행의 흐름등을 파악한다.
박씨가 하고 있는 일은 한마디로 유행을 창조하는 일. 각종 해외잡지·패션정보 등을 통해 아이디어를 얻은뒤 계절별·월별로 구입할 의류의 전반적인 주제·색깔·스타일등을 정한다.
그가 결정한 사항들은 개개 「사입자」들에게 전달되는데 「사입자」들은 그때그때의 상황을 고려해 구체적인 상품구입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춰 시장에서 옷을 구입하거나 의류하청업자들에게 제작을 의뢰하게 된다.
이같은 경로를 통해 구입된 옷들이 빌리지 유통의 이대앞·명동·삼성동·인천등의 매장에 채워지고 많은 소비자들의 손에 선택되어 비로소 하나의 유행이 만들어지는 것.
박씨는 「사입지」가 이처럼 유행에 민감한 직업이므로 무엇보다 미적 감각과 순발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전한다.
동덕여대에서 생활미술을 전공한 박씨가 「사입자」의 세계에 뛰어든 것은 지난 87년. 미술대에서 염색·직조를 공부하며 색에 대한 감각을 키운 그는 자신의 감각을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빌리지유통의 「사입자」 모집에 응시, 이 일과 인연을 맺게됐다.
스스로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고 사입는 일을 즐겨했다는 박씨는 이미 대학시절부터 빌리지 매장에서 디스플레이어·코디네이터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그는 특히 여성 하이패션쪽에 관심이 많아 현재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분위기의 의류를 파는 4개 코너를 맡아 운영하고 있는 중.
박씨는 올 가을·겨울의 여성의류 경향은 색깔은 베이지와 카키 계열의 파스텔색조가, 스타일은 단순하고 기본적인 디자인의 복고풍이 유행할 것이라고 전한다. 예컨대 흰 블라우스에 남색·검은색 재킷, 그아래에 진바지나 체크무늬스커트등을 받쳐입는 고전적 스타일이 인기를 모을 것이라는 얘기.
한편 빌리지유통의 경우 총 25명의 「사입자」중 6명을 제의하곤 모두가 여성인데, 다른 업소들도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어서 「사입자」중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박씨는 『남성들이「사입자」로 들어왔다가도 여성들의 감각·순발력에 뒤져 밀려나가는 형편』이라며 『여성 「사입자」들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옷을 보게돼 보다더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전한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기호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늘 감각이 깨어있는등 노력하는 자세를 유지한다면 「사입자」는 여성들의 섬세한 능력을 한껏 발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직업이라는게 박씨의 얘기. 또한 자체생산시스팀이 없거나 일부인 의류 유통업체가 계속 늘 전망이어서 수요도 많아질 것 같다고 한다.
다음해로 예정된 빌리지유통의 새로운 대형매장개장을 앞두고 요즘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는 박씨는 일하는 재미에 빠져 결혼은 생각할 틈도 없었다고 말한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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